상설전시관2 한국인의 일상
시장
<시장>
전통사회에서는 농작물을 직접 재배하여 먹고 옷감과 생활용품을 스스로 만들어 사용하였지만 그 외 필요한 물품들을 시장에서 구입하기도 하였습니다. 시장은 각지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물건을 사고 팔고 물물교환이 이루어지는 상업의 중심지인 동시에, 만남의 장소이자 볼거리도 많아 언제나 왁자지껄한 교류와 오락의 장이었습니다.
화폐
농경중심이었던 조선사회에서 후기로 오면서 점차 상공업이 발달하여 화폐에 대한 수요가 커지게 되었습니다. 17세기에 주조된 상평통보는 조선 후기까지 전국적으로 통용된 대표적인 화폐인데요. 18세기에는 세금이 금납화되면서 화폐가 1차적인 유통수단이 되어 상품 유통을 촉진시키는데 기여하였습니다. 이러한 화폐의 발달과 도로망의 정비를 배경으로 조선 후기에는 전국에 1,000개가 넘는 시장이 개설될 만큼 시장이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도량형과 셈기구
시장의 발달과 더불어 다양한 상품 거래가 이루어지면서, 더 정확한 거래를 위한 방법이 개발되었습니다. 이에 상품의 특성에 맞도록 길이, 부피, 무게를 재는 도량형 기구 및 계산을 손쉽게 하기 위한 셈기구 등이 등장하였습니다. 길이를 잴 때는 주척을 사용하였고, 무게를 잴 때는 저울을 사용하였는데 푼, 돈, 냥, 근, 관 등의 단위가 쓰였습니다. 부피를 잴 때는 홉, 되, 말이 사용되었는데 홉은 보통 한 줌에 해당하는 양이며, 10홉은 1되, 10되는 1말이 됩니다. 셈기구로는 산가지가 사용되었는데요. 막대를 일정한 방법으로 늘어놓아 숫자를 표시하고 계산하였습니다.
부보상과 객주
시장에서 상업을 주도했던 사람들 중에는 부보상이 있습니다. 부보상은 목기, 소금 등 무게나 부피가 큰 상품을 등에 짊어지고 다니는 부상과 장신구, 종이물품 등 부피가 작고 가벼운 상품을 보자기에 싸가지고 다니는 보상을 합쳐 이르는 말로 보부상이라고도 합니다. 이들은 상품을 가지고 장마다 다니면서 지역 간에 물건을 유통시켜 시장을 활성화시켰으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역할도 하였습니다. 부보상들은 조직을 갖추고 있었고, 상인을 관리하는 관청인 상무사에 소속되어 임명장을 받고 상권을 보장받았습니다. 이외에도 다른 지역에서 온 상인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물건을 맡아주거나 중간에서 매매를 성립시키는 일을 했던 객주도 시장에서 활약한 상인이었습니다.
판과 꾼
다양한 볼거리와 즐거움으로 시장에 더욱 사람들이 몰려들게 했던 이들은 놀이꾼이었습니다. 큰 장터에서는 산대놀이나 남사당놀이 등이 펼쳐졌는데요. 이러한 놀이는 탈을 쓰고 공연하는 탈춤의 하나로, 상인들이 손님을 모으기 위해 광대에게 돈을 주어 놀게 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산대놀이는 송파산대놀이, 양주별산대놀이, 봉산탈춤, 강령탈춤, 오광대놀이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남사당놀이로는 안성 남사당 바우덕이 축제가 유명하지요. 이러한 탈춤은 당시의 현실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있으며, 서민의 고달픈 삶을 춤과 놀이로 승화하여 즐긴 민중의 놀이입니다.
시장에는 물품에 따라 포목전, 어물전, 싸전 등 다양한 상점이 있었는데요. 시장을 둘러보면서 전통사회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어떠한 물건들을 사용하였는지 함께 살펴볼까요?
포목전
각종 직물을 판매하는 포목전입니다. 옷을 만들고 이불을 만드는 데 직물은 필수품이지요. 포목전도 직물의 종류에 따라, 무명을 파는 면포전, 명주를 파는 면주전, 모시를 파는 저포전, 베를 파는 포전 등 각기 전문적인 상점이 있었습니다.
상전
상전에서는 일용잡화를 살 수 있었습니다. 여성들의 머리 장식인 댕기, 소지품을 넣는 주머니, 수젓집도 보이고요. 장도, 노리개 등 여성용 장신구와 세조대, 광다회와 같은 남성들의 도포 끈도 판매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빗, 거울, 귀이개, 안경집 등 그야말로 다양한 잡화가 있습니다.
세물전
옛날에도 물건을 빌려주는 대여점이 있었다는 것을 아시나요? 바로 세물전인데요. 흔히 혼례나 상례 등 큰일을 치를 때 필요한 의복이나 그릇, 소반 등의 물품을 빌려서 사용하였습니다. 소반은 식기를 받치거나 음식을 먹을 때 쓰는 작은 상으로, 우리나라의 좌식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생활용품입니다. 전통적인 밥상 문화는 한 사람당 하나의 상에 음식을 놓고 먹는 독상 차림이 기본이었기 때문에 음식을 차리는 소반이 다양하게 발달하였습니다.
모자전
여기는 모자를 파는 상점입니다. 조선시대 남성들의 차림새에서는 반드시 모자가 필수인데요. 때와 상황에 맞게 의관을 갖춰 입는 것이 중요하였고 그만큼 다양한 종류의 모자가 존재하였습니다. 말총으로 만든 갓인 흑립, 국상 때 쓰는 흰 삼베를 씌운 백립, 신분이 낮은 역졸이나 부보상이 썼던 대오리를 엮어 만든 패랭이, 관례를 마친 남자나 관아의 심부름꾼들이 쓰던 풀을 엮어 만든 초립, 갓 아래 받쳐 쓰던 일상적인 관인 탕건 등 각기 용도와 재료별로 구분한 모자전이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모자인 갓은 남성이 외출이나 의례를 행할 때 쓰던 관모로 흔히 흑립을 가리킵니다. 갓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요. 각각의 전문적인 장인들의 분업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총모자장이 말총을 엮어 머리를 덮는 부분인 총모자를 만들고, 양태장이 가늘게 오려낸 대나무를 엮어 차양 부분인 양태를 만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총모자와 양태를 이어서 갓의 전체적인 형태를 다듬고 완성하는 작업을 입자장이 합니다.
신발전
신발전에서는 모자와 마찬가지로 재료와 용도에 따라 다양한 신발이 판매되었습니다. 일반 서민이 신는 짚신을 비롯하여 짚이나 삼을 섞어 정교하게 만든 미투리, 가죽과 비단으로 만든 당혜‧운혜‧태사혜, 비오는 날이나 진 땅에서 신는 나막신과 가죽에 기름을 먹이고 바닥에 징을 박은 징신(진신) 등 다양한 신발이 있었습니다.
채상장과 자리짜기
시장에서는 이외에도 다양한 생활용품을 볼 수 있습니다. 대나무를 얇고 가늘게 잘라서 색을 입혀 무늬를 넣어 짠 채상 바구니는 만드는 과정이 힘들고 정교하여 귀한 생활용품 중 하나였는데요. 일반 서민들은 혼수품으로 구비하기도 하였습니다. 바닥에 까는 자리도 보이는데요. 자리는 시장에서 좌판으로 사용하는 거친 멍석, 손님을 접대하기 위한 무늬를 넣은 화문석 등 형태가 다양하고, 재료도 왕골, 부들, 짚 등 여러 가지가 쓰입니다.
이렇게 국립민속박물관 상설전시관 2관에서는, 무더위 속에서 고된 노동을 하면서도 적절한 쉼을 통해 일과 휴식의 균형을 맞춰가며 보낸 여름의 일상, 그리고 시장에 펼쳐진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유물을 통해 전통사회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럼 이것으로 여름과 시장에 대한 해설을 마치겠습니다.
계속해서 가을과 겨울의 일상이 이어집니다.
지금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ermanent Exhibition 2 The Korean Way of Life
Market
People in traditional society basically lived self-sufficiently, cultivating vegetables and making daily supplies and fabrics for themselves. However, sometimes they purchased goods that they couldn’t make on their own at a market. Traditional markets were the centers of commerce where people from different regions gathered to trade products. At the same time, they were lively and festive centers of entertainment, where lots of people always mingled and communicated.
Currency
Commerce gradually developed in the late Joseon Dynasty, leading to the increasing demand for currency. Sangpyeongtongbo, a representative currency of this time, was first issued in the 17th century and stayed in use nationwide until the end of the period. As people started to pay taxes in cash in the 18th century, currency became the primary means of distribution and accelerated commodity flow. Based on the development of currency along with the improvement in road conditions, more than 1,000 local markets opened in this period.
Metrological Instruments and Calculation Tools
As various products started to be traded in markets, people sought ways to increase accuracy in trade. This led to the development of calculation tools and metrological instruments measuring length, volume, and weight. Jucheok, a sort of ruler, was used to measure length, while a weigh scale measured weight. The units of weight included poon, don, and nyang. Hop, doe, and mal were the units of volume. A hop was equal to one grip, a doe was 10 times larger than a hop, and a mal was 10 times larger than a doe. As for calculation tools, San-gaji was used. This bundle of sticks was used for marking numbers and calculating.
Peddlers and Inns
There were peddlers among those leading commerces in the markets. Peddler, or bubosang in Korean, was a term referring to two different types of merchants: busang and bosang. Busang were individuals who sold bulky goods, such as salt jars and wooden containers, which they carried on their backs. As for bosang, they carried relatively smaller goods, such as jewelry or ornaments wrapped in fabric. They traveled from one market to another carrying products, and as a result they contributed to the widening of the distribution network in the country. And they were the insiders who told local residents what was going on around the world.
The bubosang had their own organization. After receiving a certificate of appointment, they became members of a sangmusa, a government office that managed merchants, and were guaranteed commercial rights. In addition, there was another group of important merchants in the traditional market: gaekju. They provided meals and lodging to merchants from other regions, took care of goods, and mediated sales.
Entertainment
It was the play makers who attracted more people to the market with a variety of attractions and forms of entertainment. Various styles of mask dances, sandaenori and namsadangnori, were performed in large markets to attract customers. Among those representative sandaenori were Songpa sandaenori, Yangju byeolsandaenori, Bongsan talchum, Gangryeong talchum, and ogwangdaenori. As for namsadangnori, Anseong namsadang baudeogi Festival was famous. This mask dance was a kind of folk entertainment that satirized and criticized the reality of those days and sublimated the hardships in commoners’ lives into dance and play.
There were a variety of stores in markets, including fabric stores, grain stores, and fish shops. Shall we take a look around a market and see what kind of items Korean people used to use in daily life?
Fabric Stores
This is a fabric store. Fabric was indispensable for making clothes and blankets. Fabric stores were categorized according to the type of fabric they sold. Cotton was sold in a myeonpojeon, silk in a myeonjujeon, ramie in a jeopojeon, and hemp in a pojeon.
General Stores
General stores were places an assortment of goods were sold. We can see women’s hair ribbons (daenggi), pouches for carrying belongings, and spoon bags. General stores also sold other accessories such as ornamental knives and pendants for women and waist bands and belts for men. Combs, mirrors, ear picks, and eyeglass cases are also displayed in this showcase.
Rental Stores
Can you imagine that there existed rental stores in those days? In the Joseon Dynasty, semuljeon lent goods to customers. People generally visited semuljeon to rent costumes, dishes, and tables needed for big ceremonies, such as weddings or funerals. A soban, a small table on which Koreans set rice and side dishes when having meals, is the representative household item showing Korean lifestyle. At that time, small tables were widely produced in various sizes, shapes, and patterns because traditionally Koreans had their meals at individual tables.
Hat Shops
This is a hat shop. Men in the Joseon Dynasty were required to wear hats to complete their outfits. There were various hats so that men could be well dressed for different occasions. A heukrip was an official hat made of horsehair and a baekrip, covered with white hemp, was the hat worn at national funerals. Men of lower classes, including low-ranking soldiers or peddlers, wore paeraenggi, hats woven with bamboo strips. Young men, after their coming-of-age ceremony or errand boys, used to wear chorip, which were made of grass. And tanggun, headgear worn underneath gat, were also sold in hat shops.
Gat, referring to heukrip in most cases, were the representative hats of the Joseon Dynasty. They were usually worn for ceremonial rites or when going out. It took at least three steps to make one gat, each of which was elaborately made by professional artisans. Chongmoja-jang were the artisans who wove horsehair to shape the crowns, and yangtae-jang were those who wove bamboo strips to make brims. And those who put the crowns and brims together were the ipja-jang.
Shoe Stores
In shoe stores, various shoes were sold depending on the material and use, just like in hat shops. There were a variety of shoes, including straw shoes worn by ordinary people, hemp sandals elaborately made by mixing straw and hemp, and leather shoes covered with silk. And those clogs and shoes with cleats were the shoes worn on rainy days.
Bamboo Basket Crafts and Mat Weaving
In addition to the hats, shoes, and fabrics, many other household items were sold in markets. Bamboo baskets were one of the most precious household items because making them was a difficult and complicated process, which involved splitting bamboo into thin pieces, dyeing bamboo strips, and weaving them in creative patterns. Some commoners bought them as wedding gifts.
And what can we see in the next room? Various types of mats were produced ranging from rough straw mats to luxurious rugs with beautiful patterns. Sedge, cattail, and straw were the materials used to make the mats.
As we have explored, the second exhibition of the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offered an opportunity to learn about Korean lifestyle in traditional society through stories and various artifacts displayed in the market, as well as the lives of Koreans who balanced work and rest while working hard in the summer heat.
It’s time to wrap up the commentary on this part.
Next up is the daily life in fall and winter.
Thank you.
Translator : Hyeongmin KO
Copy-editor : Jocelyn Wright, Changhyun OH
常设展馆2 韩国人的日常
市场
在传统社会, 人们虽然自己可种植农作物,也可制作衣料和一些生活用品, 但除此之外, 还需要从市场购买一些必需品。市场是各个地区各类人群聚集起来, 买卖货物并进行物物交换的商业中心, 同时也是人与人相会的场所,看点多,人们在那里交流、游玩,随时都热闹非凡。
货币
以农耕为中心的朝鲜社会发展到后期,工商业逐渐发达起来,对货币的需求也越来越大。17世纪铸造的“常平通宝”是朝鲜后期全国通用的代表性货币。18世纪,随着税金折合成货币上缴,货币成为第一流通手段,为促进商品流通做出了贡献。在这种货币流行和路网完备的背景下,朝鲜后期全国开设了1000多个集市,市场非常发达。
度量衡和计算工具
随着市场的深入发展,各种商品的交易随之出现,为保证交易的准确无误,开发出了一些新的计量方法,出现了按照商品特性测量长度、体积和重量的度量器具,以及便于运算的计算工具等。量长度时使用周尺,称重量时使用秤, 还采用了分、钱、两、斤和宽等单位。测量体积时使用了合、升和斗。一合等于一把,十合等于一升,十升等于一斗。计算工具有算签子,用一定方法排好签子,标识出数字,然后进行计算。
褓负商和货栈主
在市场上主要从事商业活动的人中,有一类人是褓负商。背着木器、食盐等重量或体积较大商品贩卖的人叫负商,背着首饰、纸质物品等体积小且轻便商品贩卖的人叫褓商,合起来统称褓负商,类似中国的货郎。他们带着商品奔波于各个集市之间,促成全国各地间的货物流通,活跃了市场,同时还起到了传播故事的作用。褓负商拥有自己的组织,隶属于管理商人的官厅商务社,他们得到任命书后,商圈便有了保障。除此之外, 还有为来自其他地区的商人提供食宿, 并负责保管物品或在中间进行交易的货栈主,他们也是活跃在市场上的商人。
撂地唱戏和杂耍艺人
市场上有各种各样的杂耍艺人以各式好戏吸引观众,逗人一乐。大集市流行的是山台戏和男寺党戏等。这种演出是一种戴着面具表演的假面舞,商家为了招揽顾客,付钱给杂耍艺人让他们热闹一下。代表性的山台戏有松坡山台戏、扬州别山台戏、凤山假面舞、康翎假面舞和五广大戏等。“广大”就是民间艺人,五广大戏即五优戏。在男寺党戏中, 安城男寺党的巴吾德儿节非常有名。这种假面舞通常包含着讽刺和批判当时现实生活的寓意,将平民的苦难生活升华为舞蹈和表演,是深受民众喜爱的娱乐活动。
根据物品种类的不同, 市场上开设有布廛、鱼廛和米廛等各种商店。逛市场的同时,要不要一起来看看传统社会里,人们在日常生活中会用到哪些东西?
布廛
这是销售各种织物的布店。做衣服和做被子时, 都必须用到织物。布廛也会根据织物种类的不同,分别开设各类布的专卖店,有专卖土布、粗布的棉布廛,专卖丝绸的绸缎廛,专卖苎麻布的纻布廛,专卖麻布的布廛等等。
商廛
传统社会的商廛相当于现在的杂货店,那里可以买到各式各样的日用百货。不仅有女性的头饰飘带, 放随身物品的小口袋和匙箸袋,还可找到妆刀、佩饰等女性装饰品,以及细穗带和称为广多绘的宽条带等男性的长袍带等等。此外,还有梳子、镜子、耳挖子和眼镜盒等各种杂货供人们选购。
租物廛
你知道以前也有租赁物品的店铺吗?就是租物廛。通常在这里可租用办婚礼或丧礼等大事时需要的服装、碗具和小炕桌等物品。小炕桌是放置餐具或平时简单吃东西时,便于搬移的小饭桌, 是韩国坐式文化的代表性生活用品。韩国传统的餐桌文化以个人为单位,基本上在各自的餐桌上配餐后独自享用, 因此这种摆放食物的小炕桌种类繁多,非常发达。
帽廛
这里是卖帽子的商店。朝鲜时代,男性的装束中少不了帽子。根据时机和场合不同,选配不一样的衣冠搭配,这是非常重要的,因此帽子的种类多种多样。用马鬃做的笠帽叫黑笠;国丧时人们戴的白色麻布帽子叫白笠;身份低下的驿卒或者褓负商戴的是篾条编的平凉笠;行过冠礼的男人,或者在官衙当差的人戴草编的草笠;还有衬在笠帽下的日用帽唐巾。根据帽子用途和材料的不同,有各种各样的帽子专卖店。
朝鲜时代最具代表性的帽子笠帽是男性外出或者举行仪式时戴的冠帽,最常见的要数黑笠。制作黑笠大致需要经过三个步骤, 分别由专门的工匠分工完成。马鬃帽匠用马鬃编制盖头部分的马鬃帽,笠檐匠用细长的竹子编成遮阳部分的笠檐。接下去由笠子匠把做好的马鬃帽和笠檐拼接起来,最后制成一顶完整的黑笠。
鞋廛
和帽子店一样,根据材料和用途不同,不同的鞋廛销售不同种类的鞋子。除了出售普通百姓穿的草鞋外, 还有用草或麻混合精工制作而成的麻鞋, 还有用皮革和绸缎制成的唐鞋、云鞋和太史鞋。另外,还有下雨天在泥地里穿的木屐,以及鞋底打上鞋钉并在皮革上涂油的一种油鞋(又称钉鞋)等,多种多样。
彩箱匠和编席子
除了这些以外, 市场上还可以看到其它各种各样的生活用品。 例如彩箱,将竹子削成薄薄的细条,上色后绘制花纹,制成的彩色篮筐,这一过程非常辛苦,属于一种精工细作的贵重生活用品。普通老百姓甚至用它作为嫁妆。
这儿还能看到地板上铺的各种席垫。有市场用的粗草席坐垫, 有待客用的编有纹样的花垫等, 不仅形态多样, 用料也很丰富,包括莞草、蒲和稻草等多种材料。
在国立民俗博物馆第二常设展馆中, 我们看到人们一边顶着酷暑辛苦劳动,一边通过适当的休息调节作息,实现均衡的夏令日常生活。另外,这里还通过市场上各种人物的故事和文物,展示出了传统社会人们的生活面貌。
那么,有关夏季和市场的解说就到此结束。
接下来是秋天和冬天的日常生活。
谢谢大家的观看。
中文翻译 : 韩贞姬
中文编辑 : 庞建春
常設展示室2 韓国人の日常
市場
伝統社会では、農作物を自分で育てて食べ、織物や生活用品も自分で作って使いましたが、それ以外に、必要な物を市場で買うこともありました。市場は各地の人々が集まって品物の売買・交換が行われる商業の中心であると同時に、出会いの場でもあり、楽しめることも多く、いつも賑やかな交流と娯楽の場でした。
貨幣
農業中心の朝鮮社会も後期になると、徐々に商工業が発達し貨幣の需要が増えるようになりました。17世紀に鋳造された「常平通宝」は、朝鮮後期まで全国的に通用した貨幣です。18世紀には納税が金納となり、貨幣は一次的な流通手段として商品流通の促進に大きく影響を与えました。このような貨幣の発達と道路網の整備を背景に、朝鮮後期には全国に1,000ヵ所以上の市場が開設されるほど、市場が発達しました。
度量衡と計算器具
市場の発達に伴い、様々な商品の取引が行われるようになると、より正確な取引のための方法が編み出されました。商品の特性に合わせて長さ・体積・重さを計ることのできる度量衡器や、計算が容易にできるよう計算器具などが開発されました。長さの計測には周尺が用いられました。重さの計測には秤を使い、その単位は分・銭・両・斤・貫などが使われました。体積の計測には合・升・斗などが用いられました。合は大体一つかみに当たる量であり、10合が1升、10升が1斗となります。計算器具は算木が使われました。算木を決まった並び方に置くことで数字を表し、計算をしました。
負褓商と客主
市場で商業活動の中心となった人々の中に負褓商(行商人)がいます。負褓商とは、木器・塩など重くてかさ張る商品を背負って各地を回る負商と、装身具・紙など比較的に軽くて小さめの商品を褓(ふろしき)で包んで移動しながら販売する褓商を合わせて呼ぶ言葉で、褓負商ともいいます。負褓商は商品を各地の市場へ持ち込み、地域間で商品を流通させて市場を活性化させました。また、世の中の話題を伝える役割も担っていました。負褓商は組合を作り、商人を管理する官庁の商務社に所属して任命状をもらい、商権を保障されていました。他に、各地から集まってきた商人たちに宿や食事を提供したり、商品を預かって委託販売した客主も、市場で活躍した商人でした。
大衆芸能
より多くの人々を市場に呼び寄せたのは、娯楽を提供する大衆芸人でした。大きな市場では、「山台(サンデ)ノリ」や「ナムサダン・ノリ」など、大衆芸能の公演が開かれました。このようなノリは、タル(仮面)を被って演じるタルチュム(仮面劇・踊り)の一つで、客寄せのために商人が芸人にお金を払って公演を行わせました。代表的な山台ノリとして、「松坡(ソンパ)山台ノリ」、「楊州別(ヤンジュピョル)山台ノリ」、「鳳山(ポンサン)タルチュム」、「康翎(カンニョン)タルチュム」、「五広大(オグァンデ)ノリ」などが挙げられます。ナムサダン・ノリは「安城(アンソン)ナムサダン・バウドギ祭り」が有名です。このようなタルチュムは、当時の世相を批判・風刺する意味が込められており、庶民の辛い生活を舞と遊びに昇華して楽しむ民衆の芸能でした。
市場には、商品により布木廛(ポモクチョン:反物屋)、魚物廛(オムルジョン:魚屋)、米廛(ミジョン:米屋)など、様々な商店がありました。市場を巡りながら、伝統社会の人々が日常生活でどのような物を使っていたのか見てみましょう。
布木廛(ポモクチョン:反物屋)
様々な種類の布を販売するお店です。布は服や布団などを作るのに欠かせません。布木廛も布の種類ごとに、木綿を扱う綿布廛(ミョンポジョン)、絹織物を扱う綿紬廛(ミョンジュジョン)、カラムシ織りを扱う紵布廛(チョポジョン)、麻布を扱う布廛(ポジョン)など、それぞれ専門店がありました。
床廛(サンジョン:雑貨屋)
床廛では日用雑貨を買うことができました。女性用髪飾りのテンギ、携帯品を入れるチュモニ(巾着)、匙箸入れが見えます。粧刀(チャンド)、ノリゲなど女性用の装身具や、細条帯(セジョデ)・広多絵(クァンダフェ)など男性の道袍(トポ)に巻き付ける結び紐も販売していました。他にも、櫛、鏡、耳かき、眼鏡入れに至るまで、様々な雑貨を扱いました。
貰物廛(セムルジョン:レンタル)
昔もレンタルショップがあったことをご存じでしょうか。それが貰物廛です。婚礼や葬礼のような大きな行事に必要な衣服や食器、小盤(ソバン)などの物品を有料で貸していました。小盤は食器や食べ物を載せて運んだり食事をする時に使うお膳で、韓国の床座文化を表す代表的な生活用品です。伝統的な食事文化は、各自の小盤にご飯とおかずを載せて食べるひとり膳が基本で、多様な小盤が発達しました。
帽子廛(帽子屋)
ここは帽子のお店です。朝鮮時代、男性の服装において帽子は必須でした。時と場合に応じて衣冠を整えることが重要であり、それだけ様々な種類の帽子がありました。馬尾毛を編んで作った黒笠(フンニプ)、国喪の時に被る帽子で白い麻布を覆い被せた白笠(ペンニプ)、駅卒や負褓商など身分の低い人が被った竹製のペレンイ、冠礼を終えたばかりの若い男性や官衙の使用人たちが被る草笠(チョリプ)、カッ(笠子帽)の下に日常的に被った宕巾(タンゴン)など、用途や材料ごとに扱う店が異なりました。
朝鮮時代の代表的な帽子であるカッは、男性が外出したり儀礼を行ったりする時に被る冠帽で、一般に黒笠を指します。カッは完成までに大きく三つの工程がありますが、それぞれ専門的な職人たちが分業します。馬尾毛を編んで頭を覆う部分の帽子を作り、糸のように細く裂いた竹を編んでつばの部分のヤンテを作ります。その後、帽子とヤンテを繋ぎ、全体的に形を整えて完成させます。
鞋廛(ヘジョン:靴屋)
鞋廛では、帽子と同じように材料と用途によって様々な履物が販売されました。庶民が履いたチプシン(草鞋)をはじめ、藁や麻を混ぜて精巧に編んだミトゥリ、革や絹を材料にした唐鞋(タンヘ)・雲鞋(ウンヘ)・太史鞋(テサヘ)、雨の日やぬかるんだ道で履いたナマクシン(木靴)、革に油を塗り靴底に鋲を打ち付けたチンシンなど、多様な履物がありました。
彩箱匠(チェサンジャン)・筵作り
他にも、市場では様々な生活用品が見られます。竹を薄く切って色とりどりに染め、模様を入れて編んだ箱を「彩箱」といいますが、その作り方は精巧で手間のかかるものだったので、貴重な生活用品の一つでした。庶民たちがお嫁に行く時に用意することもありました。そして敷物も見えますね。市場や農家などで使う粗めの筵、お客さんのもてなしに使う華やかな柄入りの花紋席(ファムンソク:花ござ)など、形が多様で、材料も藁・茅・莞草など様々です。
以上のように、常設展示室2では、厳しい暑さの中、辛い労働をしながらも適切な休みを取ることで、仕事と憩いのバランスを取って過ごした夏の日常や、市場を舞台とした様々な人たちの物語と展示品を通し、伝統社会の生活の様子を窺うことができます。
以上、夏と市場についての解説を終わらせていただきます。
次に、秋と冬の日常が続きます。ご観覧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日本語翻訳 河閔恵(ハ・ミンヘ)
翻訳監修 中村克哉(なかむら かつ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