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설전시관1 한국인의 하루 (봄)
아침
안녕하십니까?
국립민속박물관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옛 궁궐인 경복궁 내에 위치하고 있는 생활사 박물관입니다. 한국의 민속 문화를 소개하는 상설전시관은 제1관 <한국인의 하루>, 제2관 <한국인의 일상>, 그리고 제3관 <한국인의 일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중 제1관 <한국인의 하루>관은 조선 후기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엿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곳은 사계절에 따라 변하는 하루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계절마다 유물을 교체해 상설전을 기획전처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해설을 시작하겠습니다.
앙부일구
현재 전시장 입구의 짙은 어둠은 동이 트기 전 새벽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시간을 보는데요. 시간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는 옛날 사람들이 사용했던 해시계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시계의 이름은 가마솥을 닮았다 하여 앙부일구라고 부릅니다. 태양의 그림자를 측정해서 시간을 알려주는 반구형의 시계로, 1434년 세종대왕의 명에 따라 장영실, 이천, 김조 등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행인들이 많이 다니는 대로에 설치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었습니다. 15세기에는 글을 읽지 못하는 백성들도 쉽게 알 수 있도록 그림을 이용해서 시간을 표시했다고 하니,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여기 전시된 것은 임진왜란 이후에 만들어진 것을 복제한 것으로, 글을 이용해서 시간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앙부일구 보는 법
다음으로는 앙부일구 보는 법을 간단하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오목한 시계판 중간에는 정북방향을 가리키는 영침이 있고, 시계판 표면에는 7개의 세로선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이 세로선은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의 시간을 나타냅니다. 자세히 보시면 세로선 사이에는 또 7개의 짧은 선이 있는데, 각각의 선은 15분을 의미합니다. 또한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13개의 가로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동지에서 하지까지의 절기를 나타냅니다. 여름에는 영침의 그림자가 짧고, 겨울에는 길어집니다. 우리조상들은 이런 해시계를 통해서 시간뿐만 아니라 절기까지 한눈에 볼 수 있었습니다.
▶아침
여기부터는 만물이 깨어나는 아침입니다. 닭 울음소리가 새벽 공기를 가르면, 통금해제를 알리는 종이 33번 울리고 마침내 하루가 시작됩니다.
일용지결
여기 책자가 하나 놓여있는데요. 『일용지결』이라고 쓰여진 이 책은 생활지침서로, 지금 우리가 하루 일과표를 짜듯이 조선시대 '윤최식'이라는 선비가 하루를 '십이간지'에 따라 열두 시각으로 나누어 선비들이 해야 할 일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것은 디지털 책자로 손수 책장을 넘겨보실 수도 있는데요. 첨단디지털과 전통의 조화를 시도한 학예연구사의 기획력이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그럼 사랑채로 이동하셔서 선비들의 아침 모습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선비의 의관정제
이 공간에는 조선시대 양반사대부 집안의 사랑채를 재현하였습니다. 사랑채는 사랑방, 사랑대청, 누마루로 구성되며, 대문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서 외부세계와의 연결을 의미하는 동시에, 남성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남성전용공간입니다. 선비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세안을 하고 의복을 갖춘 후, 부모님께 문안인사를 드리고 사당에 가서 절을 올렸습니다. 이곳에는 당시 선비들이 의관을 정제할 때 사용하던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정리할 때 사용하던 음양소와 앙증맞은 수염 빗까지 다양한 미용도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선비들은 하루를 맞이하면서 몸과 의복을 단정히 하는 것을 반드시 지켜야할 덕목으로 여겼습니다.
하피첩
이 유물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귀중한 보물 제1683-2호인 ‘하피첩’입니다. 이 하피첩은 조선후기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10년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 갔을 때, 부인이 보낸 노을빛 치마를 잘라 두 아들 학연과 학유에게 교훈이 될 만한 글을 적어 보낸 서첩입니다. 여기서 ‘하피’란 노을 빛깔의 붉은 색 치마란 뜻으로, 조선시대 사대부 여인의 예복을 의미합니다. 하피첩은 총 네 첩인데 안타깝게도 세 첩만 전해지고, 6.25때 분실되었다가 지금은 우여곡절 끝에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손님맞이
이곳은 사랑방 옆에 있는 누마루입니다. 선비들은 사랑채에서 주로 손님을 맞이하고 친척이나 이웃들과 친목을 도모했습니다.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이라 하여 조상을 모시는 일과 손님을 대접하는 일은 선비들이 반드시 지켜야할 미덕이자 의무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정성껏 손님을 대접하고 시를 지어 교류하며 친분을 다졌습니다. 이곳에는 손님이 방문했을 때 대접하던 다과상과 손님과 함께 두었던 바둑판이 놓여 있습니다. 손님을 대접할 때 음식뿐만 아니라 담배도 같이 대접했는데요. 문중의 종가에서는 찾아오는 손님을 그냥 보내는 법이 없었습니다. 이들을 예로 맞이하는 것은 종손의 몫이고, 정성스레 음식을 차리는 것은 종부의 몫이었습니다. 이렇듯 접빈객(接賓客)은 집안 전체의 중요한 하루 일과 중 하나였습니다.
관리의 시찰
그럼 이어서 관리들의 아침 풍경을 살펴보겠습니다. 관복을 입은 관리들은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일터로 향합니다. 관리의 주된 일과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지역을 살피고 백성들의 안녕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송사는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주민들 사이의 다툼을 해결하던 관리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습니다. 여기 전시된 구군복은 조선 후기에 지방관이 예를 갖춰 공식 업무를 할 때 입었습니다. 그 옆의 유물들은 지방관이 소송이나 재판을 처리하는데 사용했던 문서들입니다.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감에게 논의 소유권을 확인해 달라는 청원서도 보이고, 수령이 판결을 내릴 때 참고 서적으로 사용했던 책들도 보입니다.
공동체
이렇게 마을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맡은 일에 충실하면서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도와 가며 함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선비들은 지혜를 나누며 농사를 잘 짓는 방법을 연구하고, 재물이 넉넉한 사람들은 재산이나 물건을 나누어 형편이 어려운 이들의 혼례나 장례와 같은 집안 대소사에 쓸 수 있도록 돕기도 했습니다. 뒤에 전시된 나무로 만든 상자 안에 담겨진 그릇들은 ‘김이조합기’라고 하여, 김씨, 이씨, 조씨 집안에서 마을 행사가 있을 때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마련한 것입니다. 가까이 보시면 앞뒤에 수복 글자를 새겨서 장수와 복을 부르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선비와 관리의 바쁜 아침 풍경을 살펴보았다면, 다음은 일반 백성들의 분주한 아침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물
우물은 땅을 파서 지하수를 모아놓은 시설로, 주위의 흙이 붕괴되는 것을 막고, 또 사람이나 동물이 빠지지 않도록 우물 입구 주위에 돌을 정(井)자 형태로 높게 쌓아 올려서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유물 형태를 방틀 또는 정(井)자처럼 생겼다 하여 정자틀이라고 불렀습니다. 당시 우물이 있는 집도 있었지만 대개는 마을 공동 우물에서 아침마다 물을 길어 사용했습니다. 사람들은 동네에서 제일 먼저 물을 떠와야 하루 운이 좋다고 믿어서, 아침 일찍 물을 길어 사발에 담아 부엌에 두고 조왕신께 치성(致誠)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물동이와 똬리
이 유물은 우물을 길어 옮기던 물동이로, 물을 가득 담고 바가지를 위에 엎어놓아 물이 흘러넘치지 않도록 했습니다. 옆에 있는 것은 물동이를 일 때 사용하던 똬리인데요. 똬리의 역사를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삼국시대까지만 하더라도 바닥이 둥근 토기가 보편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물을 길어 머리에 이고 나르기 위해서는 이러한 똬리가 필수적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입춘첩
우리나라는 입춘이 되면 벽사(辟邪)를 위해 좋은 뜻의 글귀를 대문이나 기둥에 붙이는 풍습이 있습니다. 이것을 입춘첩 또는 입춘서라고 부릅니다. 입춘첩은 입춘 당일에 절입시각(節入時刻)을 맞추어 붙여야 그 효험이 있다고 여겨서, 각 가정에서는 미리 입춘첩을 준비해 두었다가 입춘 당일에 붙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번 붙인 입춘첩은 떼어내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가, 이듬해 입춘이 되면 그 위에 덧붙이는 것이 관례라고 하네요. 여기 입춘첩에 쓰여 있는 ‘입춘대길’ ‘건양다경’이라는 글귀가 눈길을 끕니다. 입춘을 맞이하여 좋은 운이 들어오고, 집안에 경사가 많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올 한해도 여러분 가정에 좋은 일만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지금까지 낯설지 않은 우리네 아침 풍경을 살펴봤습니다. 이어서 낮 시간대 바쁜 일상으로 넘어가겠습니다.
Permanent Exhibition 1 Korean Traditional Daily Life (Spring)
Morning
Hello, welcome to the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The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is a life history museum located in Gyeongbokgung, the main royal palace of the Joseon Dynasty. We have three permanent exhibitions introducing Korean folklore, respectively themed ‘Korean Traditional Daily Life’, ‘The Korean Way of Life’, and ‘Korean Life Passages’.
The first exhibition, ‘Korean Traditional Daily Life’, presents the daily routines of people from different social classes in the late Joseon Dynasty. To show how daily routines changed according to the seasons, some of the artifacts here are replaced every season.
Shall we begin the tour?
Sundial
The entrance of this exhibition is dim to represent the dawn, the beginning of the day. The first thing I see every morning is a clock. Time seems to have the mysterious power to make us move. That is also why a sundial is displayed as the first artifact in this exhibition. Because of its shape, this sundial was called an angbuilgu, literally meaning an upward-looking cauldron. The hemisphere-shaped clock that showed what time it was by the length of the sun’s shadow was invented in 1434 by Jang Yeongsil, Lee Cheon, and Kim Jo, following King Sejong's command. To help as many people read the time as possible, it was set up on the busy main street.
How to Read a Sundial
Do you know how to read a sundial? Let me explain. At the center of its hollow, there is a pin that makes a shadow, a yeongchim. Also, there are seven vertical lines engraved on the surface of the hollow. These lines, from left to right, represent the 7 two-hour periods between 6 am and 6 pm. Each time period is divided into 8 parts, which respectively represent 15 minutes. And the thirteen horizontal lines mark the 24 subdivisions of seasons from the winter solstice to the summer solstice. In summer, the shadow of the pin gets shorter, while it gets longer in winter. The sundial helped our ancestors tell the time and seasons at a glance.
Morning
From here, the morning section starts. As the crowing of roosters signaled the break of dawn and the town bell tolled 33 times to wish the gods peace and prosperity, the day finally began.
Guidebook for Confucians
The title of this book was Ilyongjigyeol. It was a guide book for Confucians of the Joseon Dynasty. Just as we are talking about daily schedules and routines today, the author of this book, Yoon Choisik, divided a day into 12 two-hour periods according to the Chinese zodiac and wrote about what the scholars did in each period. This video is a digitalized version of Ilyongjigyeol and you can flip the pages by lightly moving your hand above it. This is where the creativity of the curator, who attempted to harmonize digital technology with tradition, stands out.
Okay, let’s move to the men’s quarters to see what the Confucians did in the morning.
Men’s Quarters
This building is sarangchae, the men’s quarter of a noble family’s house. Sarangchae was a male-only space composed of a man's room (sarangbang), a floor, and a railed terrace. It was located near the main door of a house, symbolizing the link to the exterior world.
In the men’s room, we can see a variety of beauty tools used by scholars, including a yinyangso for combing hair, and a small beard comb. For the Confucians, it was very important to have a neat appearance during the day.
The first thing the Confucians did after waking up was to wash their faces and get dressed. And then, they greeted their parents and headed to their family shrines to perform deep bows to their ancestors.
Calligraphy Written on Skirts
This album is named Hapicheop. It was written by a prominent scholar, Jeong Yak-yong, in 1810. While he was in exile in Gangjin, his wife sent him an old skirt as a sign of her love and longing. He made an album out of the skirt fabric by writing 4 Chinese characters symbolizing the virtues that he wanted his two sons to keep in mind throughout their lifetime: respect, sincerity, justice, and righteousness. This book was designated as Treasure No. 1683-2.
‘Hapi’ literally meant a sunset red skirt. This kind of skirt was usually worn by noblewomen at formal events. Originally, Hapicheop consisted of four volumes, but one of them went missing during the Korean War and the other three volumes are currently owned by the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Serving Ancestral Rites and Treating Guests
Next to the men's room, we can see a railed terrace. In the men’s quarter, Confucians treated their guests and interacted with relatives or neighbors. There were two significant duties for Confucians: serving ancestral rites and treating guests well. So they took great care to interact with their guests.
Here, we can see a refreshment table and tobacco set out for them. For the jongga, the head family of the house, there was no way to let the guests leave the house without being served well. The jongson, the eldest living son of the main lineage, greeted guests with courtesy while his wife, the jongbu, prepared food for them. Serving guests was regarded as one of the most important daily routines.
Governors’ Uniforms
Next up is the morning scene of government officials. Early in the morning, officials dressed in formal uniforms and started their work. Their main jobs included inspecting their assigned regions by going around the villages and protecting villagers. Among these, settling legal conflicts was considered especially important. Governors listened to the stories of people who had been victimized or falsely charged and resolved conflicts between villagers.
This robe, called a gugunbok, was the uniform that the local governors wore for formal events in the Joseon Dynasty. In the showcase next to the robe, we can see an assortment of documents that the local governors read to understand the filed complaints. Among those papers, we see a petition requesting a governor to confirm the ownership of some paddies and the lawbook he referred to when making verdicts.
Community
While working hard to earn a living, villagers helped each other to solve big and small problems. Scholars applied their wisdom to studying farming techniques while affluent people shared their wealth and goods with those in need to help them hold ceremonies, such as weddings and funerals.
Here, we can see a wooden box with a set of dishes. These were called Kim•Yi•Cho dishes after the surnames of the three families who jointly prepared them for village events. The Chinese characters 壽 (longevity) and 福 (fortune) were written on the front and back of the box symbolizing a wish for wellness.
So far, we have learned about the morning routines of Confucians and government officials. Next up, we discuss what commoners did in this period.
Wells
A well is a deep hole dug in the ground to collect underground water. It also functioned as a levee to keep the surrounding soil from collapsing. To prevent humans or animals from accidentally falling into the well, people piled up stones around wells in a hashtag form, so some people called wells a hashtag frame. There were a few families who had private wells in their houses, but most villagers had to draw water from public wells every morning. Back then, it was widely believed that being the first person in the town to draw water in the morning brought good luck during the day, so villagers headed to the wells early. People put a bowl of well water in the kitchen when they offered prayers to Jowangsin, the god of fire and hearth who stayed in the kitchen and cared for the health of the family.
Water Jars and Ring-shaped Head Pads
This is a water jar. After filling this jar with water, a gourd bowl was put upon the surface of the water to prevent it from spilling over. Beside it, there is a ttoari, a ring-shaped head pad for bearing jars. Although we do not know much about the history of this head pad, given the fact that earthenware with round bottoms was commonly used in the Three Kingdom period, it seems that ttoari have been used since ancient times.
Hand-calligraphed Banners Greeting Spring
In Korea, there was a custom of putting up hand-calligraphed banners on house doors and pillars to greet the spring and prevent evil spirits from entering. These banners were called ipchuncheop or ipchunseo. At that time, it was believed that ipchuncheop could be effective only when they were put up at the exact moment of ipchun, the beginning of spring. And they were not to be removed until the arrival of the following ipchun. Shall we have a look at the phrases written on these banners? They are ipchundaegil and geonyangdagyeong, which meant having lots of fortune and luck in the new year.
So far, we have seen the morning activities of our ancestors. Next, we turn to midday routines.
Translator: Hyeongmin KO
Copy Editor: Jocelyn Wright
Changhyun OH
常设展馆1 韩国人的一天 (春)
清晨
大家好! 欢迎各位来到国立民俗博物馆。
国立民俗博物馆是位于朝鲜时代的王宫--景福宫内的生活史博物馆。常设展馆主要介绍韩国的民俗文化,由第一馆《韩国人的一天》、第二馆《韩国人的日常》和第三馆《韩国人的一生》组成。其中第一馆《韩国人的一天》展示朝鲜后期各阶层的人如何度过一天。而且,这里的常设展像特别展一样,每个季节都更换应季的文物,以反映“一天”随季节变化而改变的面貌。那,现在开始解说。
仰釜日晷
现在展厅入口的深灰色表现的是黎明前的黑暗。每天早上睁开眼睛,我首先会确认时间。时间有推动人的力量。因此,这里展示着古时候人们用过的太阳表。这个计时器的外形像一口锅,所以我们称之为仰釜日晷。它呈半球形,通过测量太阳的影子来计时,是1434年奉世宗大王的命令,由蒋英实、李蒇、金铫等人创制而成。朝鲜时代将它设置在行人较多的大街上,让大家知道时间。
观测仰釜日晷的方法
下面就简单介绍一下观测仰釜日晷的方法。凹陷的表板中间有指向正北方的影针,表板表面刻有7条竖线。这些竖线从左到右,表示早上六点到下午六点这段时间。仔细看一下,竖线之间还有七条短线,每条线代表十五分钟。另外,从上到下又有十三条横线,表示冬至到夏至之间的二十四个节气。夏季影针的影子短,冬季较长。我们的祖先通过这个仰釜日晷不仅可以知道时间,而且连二十四节气也一目了然。
<清晨>
从这里开始是万物苏醒的清晨。雄鸡破晓,解除宵禁的钟声敲响33次后,新的一天终于开始了。
《日用指诀》
这里摆着一本小册子,名为《日用指诀》,是当时的生活指南。就像我们现在制定日程表一样,朝鲜时代一位名叫“尹最植”的书生,根据“十二干支”将一天分为十二个时段,用册子详细地记录了书生们应该做的事情。这里陈列的是可以动手翻阅的数码手册,凸显了学艺研究士试图将尖端数码技术与传统造诣完美结合在一起的企划能力。那我们先到韩国的厢房——舍廊宅,去看看书生们晨起后的活动吧。
书生正衣冠
这里重现了朝鲜时期两班士大夫家里的舍廊宅,由舍廊房、舍廊大厅和楼廊台组成。舍廊宅的位置离大门比较近,意味着这里是与外界沟通的空间,同时也是男人们日常生活的专用区域。书生们早早起床,洗漱更衣之后向父母问安,然后到祠堂行礼。这里展示了古时候书生们整理衣冠时用到的各种工具,包括梳理头发时用的阴阳梳和小巧玲珑的胡须梳等等,各种梳洗工具应有尽有。对书生们而言,像这样的正衣冠是每天清晨都要遵行的修德要目。
《霞帔帖》
《霞帔帖》是国立民俗博物馆收藏的珍贵宝物第1683-2号。这是朝鲜后期实学家茶山丁若镛先生1810年被流放到全罗道康津时,剪下夫人送来的霞色裙子,给两个儿子学渊和学游挥毫赐训的书帖。这里的“霞帔”意为晚霞色彩的红裙,指朝鲜时期士大夫家庭中成年女性的礼服。《霞帔帖》原有四册,可惜在朝鲜战争时期遗失,目前只流传下三册,几经周折之后现收藏在国立民俗博物馆里。
接宾客
这里是舍廊房旁边的楼廊台。书生们主要在舍廊宅接待宾客,与亲戚邻里增进感情。所谓“奉祭祀接宾客”,即供奉祖先和接待宾客,这被视为书生们必须遵守的美德和义务。于是他们盛情款待嘉宾,吟诗唱和,以此增进彼此的友谊。这里摆着招待客人时用到的茶桌和棋盘。待客时不仅要奉上美食,烟叶也是不可或缺的。宗门宗子家从来不会让客人空手而归。以礼相迎、诚心待客是宗孙分内的事,精心准备美食是宗妇的本分。如此,接宾客是家里整个日程中很重要的一部分。
视察民情
那么接下来我们来看一下官员们是怎样迎接早晨的吧。身着官服的官员一大早就要赶往工作岗位。他们的主要公务是走村串户、查看民情、维护百姓的安宁。其中,打官司是官员的主要事务之一,倾听无辜民众的投诉,解决居民间的纠纷等。
这里展示的具军服是朝鲜后期地方官员按照礼制执行公务时穿的制服。旁边的文物是地方官员经办投诉或审判时用过的文件。仔细看一下里面的内容,这是恳请县令大人帮忙确认农田产权的禀帖,还有守令大人宣判时用过的参考书籍。
共同体
在村落这个共同体里,村民们各就其位、各尽所能、有钱出钱、有力出力,共同解决各种疑难问题。书生们贡献智慧,研究如何种好庄稼。富人们拿出自己的财物,救济那些经济上不宽裕的人,婚丧嫁娶等大事小情上也都一起帮忙筹备。后面木箱子里展示的器皿叫“金李曺合器”,即遇到村里活动时,金家、李家、曺家可以共同使用的器皿。近观一下,木箱前后刻有寿福二字,寓意长寿和祈福。到现在为止,我们观览了书生和官员们忙碌的晨景,接下来了解一下寻常老百姓奔波劳碌的晨光吧。
水井
水井是从地面往下挖的地下水蓄水设施,为防止周围的土壤坍塌,或防止人和动物失足坠落,井口周围用石头堆成井字形的防护栏。这种文物形态如一个方框或井字,因此被称为井字框。当时虽然个别人家有自家的井,但大部分情况是村里人合用一口井,每天早上挑水饮用。人们相信一大早最先提水的人一天都有好运。于是,大家都很早就挑水回来,盛在碗里,放到灶头供奉灶王爷。
水罐和顶圈
这件文物是打井水和运水时用的水罐,盛满后水瓢扣在上面,防止水溢出来。旁边是顶水罐时用到的顶圈。虽无处查询顶圈的历史,但直到三国时期,圆底土器的使用很普遍,因此打水后把水罐顶在头上运送时,顶圈是必需品。
立春贴
韩国立春以后有贴门对的习俗,以此来除厄辟邪或祈求吉利,这个门对叫立春帖或立春书。人们认为立春当天或正好进入立春那一刻贴更有效,所以每家都提前准备好,好在立春当天及时贴上。贴好的立春帖一年四季都不摘下,风俗上等到来年立春的时候,要将新联贴在老联上面。这里立春贴上写的“立春大吉”、“建阳多庆”等字惹人注目,寓意祈愿立春好运,家里喜事连连。这里我也祝各位今年一年,好事连连。
到现在为止,我们观览了并不陌生的清晨光景。接下来,请一起进入日间繁忙的日常生活吧。
中文翻译 : 韩贞姬
中文编辑 : 庞建春
常設展示室1 韓国人の一日 (春)
朝
韓国国立民俗博物館へようこそ!
国立民俗博物館は、朝鮮の王宮である景福宮の敷地内に位置する生活史博物館です。韓国の民俗文化を紹介する常設展示室は、第1室<韓国人の一日>、第2室<韓国人の日常>、第3室<韓国人の一生>で構成されています。第1室<韓国人の一日>は、朝鮮時代後期の様々な階層の人々が一日をどのように過ごしていたかがわかる空間です。当室は季節ごとに展示替えをしており、人々が季節の変化に合わせて暮らしてきた様子を紹介しています。
それでは、解説を始めさせていただきます。
仰釜日晷(アンブイルグ)
展示室入り口の暗やみは、夜明けを表現しています。私は毎朝起きてすぐに時間を確認します。時間には人を動かす力があります。こちらに、昔の人々が使った日時計があります。この時計は釜に似ているため、「仰釜日晷(アンブイルグ)」と名付けられました。太陽の影を測定し時間を読む半球型の時計で、1434年、世宗(セジョン)大王の命令に従って、蒋英実(チャン・ヨンシル)・李蕆(イ・チョン)・金銚(キム・ジョ)らにより作られました。人通りの多い大通りに設置され、誰でも通りがかりに時間を確認することができました。
仰釜日晷の見方
仰釜日晷の見方について簡単にご紹介します。内側に真北の方向を指す影針があり、内面には7本の縦線が刻まれています。この縦線は、左から順番に午前6時から午後6時までの時間を表します。より詳しく見てみると、縦線の間にまた7本の短い線がありますが、各線は15分を意味します。さらに、上から下の方へ13本の横線も引いてあります。この横線は冬至から夏至までの二十四節気を示します。影針の影が夏には短く、冬には長くなります。先祖たちは、このような日時計を通して時間のみならず節気も読むことができました。
<朝>
ここから、万物が目覚める朝です。鶏の鳴き声が夜明けを告げると、夜間通行禁止の解除を知らせる鐘が33回鳴り、一日が始まります。
日用指訣
こちらに一冊の本が置いてあります。『日用指訣』というこの本は、生活の指針について書かれているもので、今私たちが一日の予定を立てるように、朝鮮時代の尹最植(ユン・チェシク)というソンビ(高潔な人格を持った知識人)が、一日を十二支に合わせて12の時刻に分け、ソンビのやるべきことを記録した本です。これは、『日用指訣』をデジタル化したもので、手を動かすと、ページをめくることができます。先端のデジタル技術と伝統の調和を試みた学芸員の企画力が際立つ部分でもあります。それでは、サランチェの方に移動して、ソンビたちの朝の日常をご覧いただきましょう。
サランチェ(男性の生活空間)
こちらには、朝鮮時代のヤンバン(両班)の家屋内にあるサランチェが再現されています。サランチェは、サランバン(部屋)・サランデチョン(板の間)・ヌ(楼)マルで構成されており、表門の近くにあって外部世界との繋がりを意味すると同時に、男性が日常生活を送る男性専用の空間として位置づけられていました。ソンビは、朝早く起きて顔を洗い、服を着て身なりを整えた後、両親に挨拶をし、祠堂で先祖に拝礼しました。ここには、当時のソンビたちが身なりを整える(衣冠整斉)時に使った道具が展示されています。髪の毛を綺麗に整えるのに使った陰陽梳(櫛)や小さな髭櫛など、様々な美容道具をご覧いただけます。このように、ソンビは一日を迎え、身体と衣冠を整えることを、必ず守るべき徳目と考えました。
霞帔帖(ハピチョプ)
この展示品は、国立民俗博物館の収蔵品で、国家指定宝物第1683-2号の『霞帔帖(ハピチョプ)』です。『霞帔帖』は、朝鮮後期の実学者である丁若鏞(チョン・ヤギョン)が、全羅道(チョルラド)康津(カンジン)で流罪中だった1810年、妻から送られてきた夕焼け色のチマ(スカート)を切って、二人の息子の学淵(ハギョン)・学遊(ハギュ)に伝えたい教訓などを書き送った書帖です。霞帔(ハピ)とは、夕焼けのような朱色のチマという意味で、朝鮮時代における士大夫層の女性の礼服を意味する言葉でもあります。『霞帔帖』は、元々全4冊ですが、残念ながら3冊のみ伝わり、それも韓国戦争の時に紛失したものの、紆余曲折の末、現在当館に収蔵されています。
奉祭祀接賓客
ここは、サランバン(部屋)と繋がっているヌ(楼)マルです。ソンビたちは、サランチェでお客さんを迎え、親戚や近所の人々と親睦を深めました。「奉祭祀接賓客」、すなわち先祖を祀ることとお客さんをもてなすことは、ソンビの守るべき美徳であり義務と考えられました。それで、心を込めてお客さんをもてなし、詩を作るなどして交流を深めました。こちらには、お客さんが訪れた際に出された茶菓の膳と、囲碁を打つための碁盤が置いてあります。お客さんには、料理のみならず、たばこも出しました。一門の本家では、訪ねてきたお客さんをもてなさず帰らせることはありませんでした。お客さんを丁寧に迎えるのは、当主のすべきことであり、誠心誠意料理を振る舞うのは、その妻のすべきことでした。このように、お客さんを接待すること(接賓客)は、一家において重要な日課の一つでした。
具軍服
続いて、官吏の朝の様子を見てみましょう。官服を着た官吏は、朝早くから急いで職場へ向かいました。官吏の主な日課は、村を見回りながら村の状況を把握し、村人が無事に暮らせるようにすることでした。その中でも、被害に遭った人の事情を聞いてあげたり、住民同士の争いを解決するなど、訴え事の処理は、官吏にとって重要な業務の一つでした。こちらに展示されている具軍服は、朝鮮後期、地方官が威儀を正して公式業務を行う際に着ました。隣には、地方官が訴えや裁判を処理した際の文書があります。詳しく見てみると、県監(地方官の一つ、県の長)に水田の所有権の確認を要請する請願書や、守令(地方官の総称)が判決を下す時に参考にした書籍もあります。
共同体
村人たちは、それぞれの役割を忠実に果たし、問題が起きればお互いに助け合いながら解決してきました。ソンビたちは、知恵を発揮して豊作のための農法を研究し、富裕な人は財産や品物を分け合い、生活に困っている人たちの婚礼や葬礼のような行事に充てられるようにしました。後ろの方に展示されている木箱の中の器は「金・李・曺合器」といい、村の行事が行われる時、金家・李家・曺家が共同で使えるように用意したものです。詳しく見てみると、木箱の周りに寿・福の文字が刻まれており、長寿と幸せを呼ぶ意味が込められています。
ここまで、ソンビと官吏の朝の日常をご覧いただきました。次は庶民の朝の風景をご覧いただきます。
井戸
井戸は、地面を掘って地下水を汲み上げるための施設で、周りの土が崩れることを防ぎ、人や動物が落ちないように、周りに石を「井」の字形に積み上げました。このような井戸の枠は「パントゥル」(井桁)または「チョンチャトゥル(井の字枠)」と呼ばれました。当時、井戸を持っている家もありましたが、ほとんどは村共同の井戸から毎朝水を汲んで使いました。村で一番最初に水を汲み上げると、一日の運気が上がると考えられ、人々は早朝から汲んできた水を小鉢に入れて台所に置き、竈王神(チョワンシン:かまど神)に心を込めて祈りました。
水甕とトァリ
この展示品は、井戸から汲み上げた水を運ぶ甕で、水がこぼれないように甕の口にパガジ(ふくべのボウル)を被せました。隣のものは、水甕を頭に載せる時に使うトァリ(円座状のクッション)です。トァリの歴史について詳しいことはわかりませんが、三国時代(高句麗・百済・新羅、BC1世紀頃~AD7世紀頃)まで普通に丸底土器が使われていたので、水甕を頭に載せて運搬するためには、このようなトァリが必需品だったのではないかと考えられます。
立春帖
韓国では立春になると、邪鬼を祓い幸せを願う文言が書かれたお札を正門や柱に貼り付ける風習があります。これを「立春帖」または「立春書」といいます。立春帖は、立春当日の節入り時刻に合わせて貼り付けなければ効能がないとされたので、各家庭では、事前に立春帖を用意しておいて、立春当日に貼り付けたそうです。一旦貼られた立春帖は、剥がさずそのままにしておき、翌年の立春の時、その上に重ねて貼り付けるのがしきたりでした。こちらの立春帖に書かれている「立春大吉」「建陽多慶」が目を引きます。立春を迎え、縁起が良く、めでたいことがたくさんあるようにとの願いが込められています。今年も皆様にとって幸多き一年になりますようお祈りします。
以上、現代人の私たちにも身近に感じられる朝の風景をご覧いただきました。
次に、昼の忙しい日常をご紹介します。
日本語翻訳 河閔恵(ハ・ミンヘ)
翻訳監修 中村克哉(なかむら かつ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