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설전시관1 한국인의 하루 (봄)
낮, 노동이 집약되는 시간
<낮>
낮은 농사일부터 집안일까지 분주한 일상이 펼쳐지는 시간입니다. 따뜻한 봄 햇살을 만끽하기 위해 나들이를 가거나, 풍년을 기원하며 한해 농사를 준비하는 사람들로 봄철의 낮은 바쁘게 흘러갑니다.
냇가 빨래
부녀자들이 냇가로 빨래를 하러 나왔습니다. 부녀자들은 농사 등 생업을 하는 중에도 빨래와 같은 집안일을 하며 바쁘게 하루를 보냅니다. 세탁기가 없었던 전통사회에서는 빨랫방망이로 빨랫감을 힘차게 두드려 얼룩과 때를 없앴습니다.
봄이 되어 얼었던 시냇물이 녹고 꽃잎이 시냇물을 따라 흘러가는 것이 보이네요.
봄놀이
시냇물을 따라가보니 봄놀이 장면이 그려진 그림 한 점이 보입니다. 문인들이 봄을 맞아 나들이 간 모습을 그린 ‘수계도권(修禊圖卷)’이라는 작품입니다. 수계(修禊)는 음력 삼월 삼짇날 흐르는 물에 몸을 씻어 묵은 액을 털어버리고 복을 기원하는 의례입니다. 전시된 그림에는 1853년, 서울에 거주하는 역관·향교 교육관 등 30여 명의 문인들이 냇가를 찾아 수계를 지낸 후 시회(詩會)를 즐기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시냇물에 잔을 띄워 보내며 봄 경치를 감탄하는 내용의 시를 지었는데, 이들이 지은 시 30수가 그림 왼편에 적혀있습니다.
‘수계도권’ 아래에는 야외에서 먹을 음식을 보관하는 ‘찬합’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휴대하기 편하도록 칸칸이 음식을 담았습니다. 담뱃잎을 보관하던 ‘담배쌈지’와 담뱃불을 붙이는 부싯돌이 들어있는 ‘부시쌈지’도 보이네요.
농사 준비
봄은 농사가 시작되는 계절입니다. 봄이 되면 농부들은 풍년을 기원하며 봄갈이를 하고 씨앗을 뿌려 싹을 틔웁니다.
봄갈이는 겨우내 얼어있었던 흙을 부드럽게 하고 토양의 질을 높이는 작업입니다. 전시장에 다양한 봄갈이 농기구들이 보이네요. 왼쪽에 전시된 농기구는 ‘써레’입니다. 바닥에 있는 흙덩이를 잘게 부수거나 바닥을 편평하게 하는 데 사용하는 농기구지요. 써레에 연결된 시옷(ㅅ)자 모양의 나무는 ‘멍에’로, 이 멍에를 소 목에 걸어 써레에 연결한 다음 써레질을 합니다.
써레 오른쪽에 있는 농기구는 ‘쇠스랑’, 쇠스랑 앞에 있는 것은 ‘따비’입니다. 쇠스랑과 따비 모두 땅을 파거나 고르는 농기구로, 돌과 나무뿌리가 많아 쟁기나 써레를 사용하기 어려운 곳에서 주로 사용합니다. 특히 쇠스랑은 도둑이 밟으면 자루가 벌떡 일어서서 이마에 큰 상처를 입힌다고 하여 농가에서는 잘 때 방문 밖에 쇠스랑을 두기도 했습니다.
봄갈이를 통해 토양이 농사짓기에 알맞은 상태가 되면 씨앗을 뿌립니다. 이를 ‘파종’이라고 하는데, 싹이 트기 좋게 씨앗을 물에 불려 사용했습니다. 씨앗을 보관하는 ‘종다래끼’와 ‘씨앗 망태기’가 보이네요.
농가 생활
농부들은 농사 이외에 어떤 일을 하며 지냈을까요? 농가의 방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방 중앙에 솜이 가득 담긴 바구니가 있습니다. 두꺼운 겨울옷에서 빼낸 솜들인데요, 날씨가 따뜻한 봄에 입기 위해 겨울옷에서 솜을 빼는 작업을 하고 있군요. 그 왼쪽에 있는 것은 ‘물레’입니다. 고치에서 실을 뽑아낼 때 사용하는 도구로, 뽑아낸 실을 감아 놓은 실타래가 앞에 보이네요.
제철 채소로 요리한 봄철 밥상을 볼까요? 김치와 같은 저장 음식을 주로 먹는 겨울과 달리, 만물이 생동하는 봄에는 새로 돋아난 순이나 나물을 채취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오른쪽을 보니 소와 말의 여물통인 ‘구유’가 보입니다. 그 옆에는 닭의 보금자리인 ‘닭둥우리’가 있네요. 들짐승이 닭을 해치지 못하도록 처마나 추녀 밑에 달았습니다.
농기구
이쪽에는 다양한 농기구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살포·도리깨·매통 등 여름이나 가을에 사용하는 농기구들이 보이는데요, 봄농사에 사용하지 않는 농기구는 이렇게 집 안에 있는 헛간에 보관하였습니다.
여름에 주로 사용하는 ‘살포’는 논의 물꼬를 트거나 막아서 물의 양을 조절하는 농기구입니다. 지주들이 논에 나가 농사를 감독하며 돌아볼 때 지팡이 대신 살포를 짚고 다니기도 했다고 하네요.
이 농기구는 ‘개상’입니다. 개상은 도리깨와 더불어 타작할 때 사용하는 농기구로, 개상에 작물을 세게 내려치면 낟알이 떨어집니다. 타작한 작물은 껍질을 벗기고 불순물과 먼지를 제거하기 위해 도정 단계를 거치는데, 이때는 매통이나 ‘키’를 사용합니다. 벽에 걸린 키에 낟알을 넣고 위아래로 흔들면 쭉정이와 티끌 등 불순물이 날아가고 깨끗한 낟알만 남게 됩니다.
왼쪽에 전시된 유물은 ‘거적틀’ 입니다. 거적은 짚을 엮어 만든 자리로, 감자나 고구마 등 수확물을 건조할 때 마당에 깔기도 하고 겨울에는 냉해를 막기 위해 항아리 위에 덮기도 합니다. 거적틀 앞에 있는 자루를 ‘섬’이라고 하는데, 거적을 반으로 접고 양쪽을 바느질하여 만듭니다. 가을걷이를 끝낸 곡식은 섬에 넣어 보관하지요.
항아리와 저장
마당으로 나가볼까요?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항아리가 보이네요. 항아리는 우리나라 장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저장 용기입니다. 특히 봄이 되면 항아리를 깨끗이 씻어 새로 장을 담그는데요, 날씨가 더워지기 전에 담가야 좋은 장맛을 낼 수 있다고 합니다.
지역마다 토양과 기후가 다르기 때문에 항아리 역시 지역에 따라 크기와 형태가 조금씩 다릅니다. 식량이 풍부한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의 항아리는 다른 지역에 비해 크기가 더 큽니다. 또한, 따뜻한 기후로 인해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에 장맛이 변하지 않도록 항아리 바닥을 좁게 만듭니다. 산간지방인 강원도에서는 구하기 쉬운 나무를 재료로 하여 추운 날씨에도 잘 깨지지 않는 나무독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장인의 가구 제작
지금까지는 농부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낮의 일상을 살펴보았습니다. 이곳은 장인들의 하루 일상을 담은 공간입니다.
나무를 이용하여 생활 도구나 가구를 만드는 장인을 ‘소목장’이라고 합니다. 소목장이 제작한 반닫이와 머릿장이 전시되어 있네요. 소목장은 전시된 것과 같이 톱과 대패, 망치 등을 사용하여 아름다운 목가구를 만듭니다. 영상 화면 옆에 전시된 것은 ‘돌대송곳’인데요, 목재에 구멍을 뚫을 때 사용합니다. 송곳을 가로지르는 나무막대를 위아래로 움직여서 목재에 구멍을 내지요.
전시장 오른쪽 아래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금속장식들이 보입니다. 이들은 가구에 장식이나 개폐용으로 부착하는 금속제 장식들로, ‘장석’이라고 합니다. 장석을 만드는 장인인 ‘두석장’은 상서로운 의미를 나타내는 무늬를 새겨 넣어 장석을 완성합니다. 가족의 화목을 상징하는 만(卍)자 문양과 수(壽)·복(福)·박쥐·꽃무늬 등이 보이네요.
반닫이
반닫이는 앞면을 둘로 나누어 윗면만 열고 닫을 수 있게 만든 가구로, 이불이나 집문서 등과 같은 물건을 보관했습니다. 소목장과 두석장이 정성을 다해 제작한 반닫이들이 전시되어 있네요.
반닫이 역시 지역에 따라 그 특징이 조금씩 다릅니다. 지역에 따라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 종류가 다르고 선호하는 무늬도 다르기 때문이지요.
화려하고 정교한 장석이 돋보이는 이 반닫이는 평안도에서 사용한 것입니다. 평안도 반닫이는 장석 전면을 매우 섬세하게 투각한 것이 특징으로 ‘숭숭이 반닫이’라고도 부릅니다. 박천 지역에서 주로 생산된다고 하여 ‘박천 반닫이’라고도 부르는데, 재료로는 피나무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한편, 전라도 반닫이는 장석의 수가 적고 무늬가 간결하여 단아한 느낌을 줍니다. 강원도 반닫이는 전면이 액자형식이며 중앙에 커다란 배꼽장식이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지요.
봄나물 캐기
봄이 되면 산과 들에 나가 봄나물을 캐서 먹습니다. 채취한 나물과 꽃 등을 보관하는 망태기가 보이네요. 어깨끈이 달린 이 망태기는 망태기를 등에 메고 양손을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고안한 것입니다.
산나물은 독성을 함유한 경우가 있어서 한번 데쳐 먹는데요, 데친 나물을 건질 때는 위쪽에 전시된 ‘나물건지기’를 사용했습니다. 데친 나물은 ‘소쿠리’에 담아서 물기를 빼내지요.
솥뚜껑 위를 보니 삼짇날 먹는 진달래 화전이 있네요. 음력 3월 3일 삼짇날에 사람들은 산과 들로 나가 화전과 화채, 쑥떡 등을 만들어 먹으며 완연한 봄기운을 만끽하고, 한 해 동안의 건강과 풍년을 기원합니다.
지금까지 조선시대 후기를 배경으로 봄철의 낮 풍경을 살펴봤습니다. 만물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봄철의 낮은 이렇듯 분주하게 지나갑니다.
낮이 지나고 저녁 어스름이 깔리면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을까요? 이어서 봄철의 저녁 풍경을 보시겠습니다.
Permanent Exhibition 1 Korean Traditional Daily Life (Spring)
Midday
Midday
Daytime was when people were busy doing tasks, such as farming and household chores. During the day, some people went out for picnics to enjoy the spring sunshine, and some people prepared for the new year by farming and praying for good harvests.
Laundry
In this scene, we see some women gathered around a stream doing laundry. During the day, women were busy doing household chores even while working hard for a living. Back in the Joseon Dynasty, when laundry machines did not exist, they used laundry bats to beat laundry to remove stains.
When the spring came around, the stream began to melt and flower petals floated down stream.
Spring Picnics
This flowing stream leads us to a painting that portrayed a scene of scholars enjoying a spring picnic. The painting was entitled Sugyedogwon, out of which sugye meant a ceremony held on the third day of the third lunar month. It was a ceremony where people washed themselves in running water to wash away their misfortunes and welcome good-luck. The displayed painting depicted about 30 scholars writing poems after holding the ceremony. They composed poems portraying the picturesque spring landscape. We can see those poems on the left side of this painting.
Under the painting, there is a dish-box. When people went for picnics, they packed food in these dish-boxes for easy portability. We can also see a tobacco pouch and a flint pouch for igniting tobacco.
Preparations for Farming
Spring was the season when the farming began. In spring, farmers plowed the earth and cast seeds in the hope of a good harvest.
Spring plowing involved softening and improving the soil. There are various plowing tools in this showcase. On the left, we can see a sseore. This kind of harrow was used to break up lumps of soil or level the earth. The ‘ㅅ’ frame log connected to the harrow is a yoke, a tool hung around an ox’s neck to help it drag the harrow.
To its right, there is a pitchfork and next to this, there is a small plow (a ttabi). Both were raking and leveling tools, used for ground that was too bumpy and rocky for a plow or harrow. Especially, pitchforks were used to catch thieves, because it was said that when thieves accidentally stepped on them, they would instantly jump up from the ground and hit thieves in the forehead. So farmers used to lay pitchforks outside their doors at night.
After the plowing was finished and the earth was ready for farming, people sowed the seeds. Before sowing, farmers soaked the seeds in water for them to sprout well. A seed basket and a straw mesh bag used to store the seeds are also displayed in this showcase.
Farming Families
What other activities did farmers do when they were not farming? Let’s look in a room in a farming house.
There is a basket full of cotton in the center of this room. It looks like a farmer’s wife was removing cotton from winter clothes to wear in the spring. To its left, we can see a spinning wheel, or mulle, which was used for reeling yarns out of cocoons.
Shall we take a closer look at the seasonal vegetables on the spring table? Unlike in winter, when people usually ate stored foods such as kimchi, in the spring, when everything was fresh, they made food with sprouts or herbs.
In this showcase, we can also see a trough and a hen nest. A hen nest was usually hung under the eaves of the house to prevent wild animals from harming hens and chicks.
Farming Tools
A variety of farming tools used in the summer or fall, such as a water shovel, a flail for threshing, and a winnowing tool, are displayed in this showcase. Back then, people kept farming tools in their barns when they were not in use.
This is a gaesang, another threshing tool. When farmers smashed crops against a gaesang, the seeds separated from the straw and fell to the ground. The threshed seeds went through the winnowing process, where they were peeled off and impurities were removed. During the winnowing process, farmers mostly used a maetong (a winnowing tool) or a ki (a Korean winnowing basket). When they shook a ki up and down tossing the seeds in the air, the wind blew debris and dust away leaving only the clean seeds.
The wooden artifact on the left is a frame for weaving straw mats called a geojeok. A geojeok referred to a mat with various uses. For example, it was put in the yard when drying crops or on jars to prevent cold damage. The basket in front of the frame is a seom, a Korean traditional basket in which grains were stored. It was made by folding a mat in half and sewing both sides.
Jars
Would you like to go into the yard? Here, we can see many jars of different sizes and shapes. A jar was an indispensable container for storing Korean sauces and pastes, jang. Every spring, people cleaned jars to store newly-made sauces. For better taste, the sauces had to be made before the weather got too hot.
The shapes and sizes of jars differed from region to region. In the grain-rich southern provinces, Jeolla-do and Gyeongsang-do, the jars were big with small bottoms to prevent the road heat from affecting the flavor of the sauce. People who lived in Gangwon-do, in the northeast, made wooden jars instead because they were easy to collect.
Craftsmen’s Workshop
So far, we have seen the daytime routine of farming families. This section introduces different categories of craftsmen and the kinds of work they did during the day.
Somokjang referred to the artisans who crafted household items and furniture with wood. In this showcase, we can see two chests that the somokjang elaborately made, along with carpentry tools, including saws, planes, and hammers. The tool hung beside the video screen is a doldae-songgot, a sort of gimlet for drilling holes in wood. By moving the wooden bar that crossed the gimlet body up and down, artisans drilled holes.
There are finely carved metal ornaments on the right side of the showcase. These metal ornaments, jangseok, were attached to furniture as decorations or to open and close them. Duseokjang, the craftsmen who made jangseok, engraved auspicious patterns on them. We can see the symbols for 卍 (auspiciousness), 壽 (longevity), and 福 (fortune), as well as bats, and flowers on the displayed ornaments. You may be surprised to learn that, back in the Joseon Dynasty, bats represented fecundity because they had many cubs, as well as prosperity since the Chinese character, pronounced bok, is the same as 福 (bok, fortune).
Half-hinged Chests
A half-hinged chest was a piece of furniture with a lid that opened upwards while the bottom half did not move. People kept various items, such as blankets and house deeds in this kind of chest. The half-hinged chest had slightly different features depending on where it was produced because the type of trees and preferred patterns varied from region to region.
This chest with exquisite ornaments was made in Pyeongan-do. The Pyeongan-do chest featured finely carved ornaments. It was also called a soong-soong-i, the word describing the perforated ornaments attached to its surface, or a Bakcheon after the city where it was produced. The main material was wood from linden trees.
In Jeolla-do, simple chests were preferred while in Gangwon-do, frame-type chests with a big ornament in the center were popular.
Gathering Spring Vegetables
When spring came, people went to the mountains and fields to gather spring vegetables. Collected vegetables were kept in straw bags like the one hung on the left. This straw bag had a shoulder strap so that people could freely use their hands while wearing it.
Some wild vegetables had to be parboiled to get rid of toxic ingredients. After being parboiled, they were picked up using this vegetable picker and drained in a sokuri, a bamboo basket.
On the cauldron lid, there are a few pan-fried rice pancakes decorated with azalea. On Samjinnal, the third day of the third lunar month, people headed to mountains and fields to enjoy spring with seasonal foods, such as the rice pancakes, and prayed for their wellness and abundance for the year.
This concludes the commentary about daytime routines in the spring in the late Joseon Dynasty. As we have seen, the daytime routines in the spring, when everything woke up after a long hibernation and welcomed the new year, passed fast.
What did people do after dusk fell? Next we will see what spring life was like in the evenings.
Translator: Hyeongmin KO
Copy Editor: Jocelyn Wright
Changhyun OH
常设展馆1 韩国人的一天 (春)
白昼
<白昼>
白天是忙碌的日常生活展开的时段,从农活到家务活,事情接连不断。有人外出游玩享受明媚的春光;有人祈愿丰收,为一年的农事做好准备,春日的白天似乎很匆忙。
溪边浣衣
妇女们都出来聚在小溪边洗衣服了。在分担农活儿、操持生计的同时,妇女们也要完成洗衣服等家务活,一天非常忙碌。传统社会没有洗衣机,就用洗衣棒使劲拍打脏衣服,来去除脏痕和污垢。
看这里,春天来了,冰冻的小溪渐渐融化,花瓣顺水漂流。
春游
沿着小溪望去,一幅春游图映入眼帘。这是一幅描绘文人春游的《修禊图卷》。修禊是一种礼仪,农历三月初三,在溪水中沐浴以消灾祈福。展出的这幅画描绘了1853年,居住在首尔的驿官、乡校的教官等三十多名文人雅士来到溪边,举行修禊后享受诗酒宴集的情景。他们行曲水流觞之戏,吟诗作赋赞美春光,画儿的左边留有他们创作的三十多首诗。
《修禊图卷》下面展示的是保管野餐食物的“馔盒”。为了方便携带,这个食盒分层盛装食物。还有保管烟叶的“烟袋”和装点烟火石的“火石袋”。
准备农耕
春天是农耕开始的季节。春天来临,农民们在祈愿丰收的同时,积极开始春耕、播种,保证种子顺利发芽。
春耕的要务是疏松冻土,增加地力。展厅里各种春耕农具琳琅满目。左边展示的农具是耖耙,用来打碎较大的土块或平整土地。连接在耖耙上的“人”字形木件是轭,挂在牛脖子上,连接耖耙之后驱使耕牛耙地。
耖耙右边的农具是“铁耙”,铁耙前面的是耟。铁耙和耟都是挖地或耙地时用的,石头和树根多,犁或耖耙不好用时就用它们。特别是铁耙,据说要是小偷一脚踩上,把柄就会猛地蹦起来,给小偷脑门儿留下大伤口,所以农家睡觉前也把它放在房门外,用来防贼。
春耕之后,土质疏松适宜种田时就开始撒种子,这叫“播种”,为了帮助嫩芽顺利破土而出,事先会将种子在水里浸泡后使用。这是保管种子用的“小篓子”和“种子网兜”。
农家生活
除了农活以外,农民们还忙些什么呢? 让我们看一下农家的房间吧。
屋子中间的大篮子里装满了棉花,这是从厚厚的棉衣里取出来的。春天天气暖和了,人们就从冬衣里取出棉花以换作春装穿。左边的是纺车,是从蚕茧里抽取蚕丝时用的工具,这里还能看到缫出来的线,绕成一块儿大大的线团。
我们来看一下餐桌上用时令蔬菜烹制的春季饭菜吧。不同于冬天主要吃泡菜等储藏食物,春天来了,万物复苏,可以采摘新发的嫩芽或野菜来改善伙食了。
右边是“料槽”,即牛马的草料桶。旁边是鸡巢,我们叫它“鸡窝”。为防止野兽袭击家禽,特意把它悬挂在屋檐或飞檐下。
农具
这边展示着各种各样的农具,有平锹、连枷、土砻等夏天或秋天用的农具。春天农活中用不着的农具就这样保管在家里的库房里。
夏天常用的“平锹”是打开或者堵住水田闸门,调节水量的农具。据说,地主们到稻田监督农事时,有时会拄着平锹来代替拐杖呢。
这个农具叫“稻床”,是打谷时和连枷一起使用的农具,把农作物放到稻床上用力敲打,谷粒就会掉下来。脱粒后的谷物还需要经过捣米过程,去除谷壳、异物和灰尘,此时就需要土砻和“簸箕”。把谷粒放入簸箕上下颠簸,瘪谷和尘土等杂质就会被抖出去,只剩下干净的谷粒。
左侧展示的文物是草席编织架。草席是用稻草编的,晾土豆和红薯等收获物时可以铺在院子里,冬天又可以盖在缸上防止冻裂。草席前面的袋子叫“苫”,将草席对折以后把两边缝上就可做成。秋收结束后,粮食就储存在苫里。
缸和储藏
去院子里看看吧?那里可以看到大大小小、形态不一的缸。缸是韩国酱文化里影响深远的储藏容器。每年春天来临,就要洗净酱缸准备腌制新酱了,想吃到美味的大酱就得勤快,要在天热之前提前腌好。
受各地土壤和气候的影响,缸的大小和形状也略有不同。鱼米之乡全罗道和庆尚道地区的缸比其他地区大一轮。而且为了不受气候温暖的影响,防止地面的热气影响酱味,缸底部特地制作得很窄小。江原道等寒冷山区因木材丰富,制缸材料也可就地取材,做成不易冻裂的木缸。
匠人制作家具
到目前为止,我们观览了农户家里白天的日常生活。这里是展现匠人们辛勤劳作的日常空间。
“小木匠”指利用木材制作生活用具或家具的人。这里的半开柜和床头柜就是小木匠做的。他们用这里展出的锯子、刨子、锤子等工具做出这些精美的家具。视频旁边展示的是“錐”,在木材上打孔的时候就用它。上下移动横穿锥子的木棍,在木材上打洞。
展场右下方是雕琢精致的金属装饰。这些装饰被称为“裝錫”,是用来装饰家具或用做开合部件的金属装饰品。制作裝錫的人叫“豆锡匠”,他们通过雕琢精细的吉祥纹样完成裝錫。这些象征家和万事兴的卍字图案和寿、福、蝙蝠、花纹等就是他们的手艺。
半开柜
半开柜是将柜子正面分成上下两部分,然后只开关上半部分的家具,通常用来保管被子或房契等用品。这里展出的是小木匠和豆锡匠精工细作的多种半开柜。
不同地区的半开柜,特征也各有差异,因为各地常见的木材种类不一样,喜好的纹样也各不相同。
平安道喜好装锡精致华贵的半开柜。该地区尤以精湛的装锡整版镂空技艺而出名,被称为“蜂窝式密雕半开柜”。“博川半开柜”因主要产于博川地区而得名,木料大量使用椴木。
反之,全罗道地区的半开柜裝錫很少,图案简洁,给人一种素雅的感觉。江原道半开柜的特点是正面呈画框状,中间有硕大的肚脐装饰。
挖野菜
春天正是到山上和野地里采摘野菜的好季节。那个是保管采下的野菜和花的网兜。网兜上面设计的肩带是用来背挎的,以便灵活使用双手。
有的野菜生吃会中毒,吃前要用热水焯一下。焯好的野菜用上面那个“捞菜叉子”捞出来,盛在“蒲篮”里沥干水分。
锅盖上的那个杜鹃花煎饼是农历三月三上巳日吃的点心。这天,大家都愿意去户外踏青,花煎饼、水果茶和艾籺糕是必不可少的美食。在享受盎然春意的同时满足口福,祈愿一年健康太平、五谷丰登。
到目前为止,我们观看了朝鲜后期春季的日间风景。在这万物复苏,万象更新的春日里,白天是如此的繁忙啊。
再来看看白天过去,傍晚以后人们是怎样打发时间的吧? 接下来请观览春日晚间的风景。
中文翻译 : 韩贞姬
中文编辑 : 庞建春
常設展示室1 韓国人の一日 (春)
昼
<昼>
昼は、農作業から家事まで、忙しい日常生活を送る時間です。暖かな春の日差しを満喫するために野に繰り出す人々や、豊作を祈りつつ一年の農作業を始める人々など、春の昼は時間が忙しなく流れます。
川辺での洗濯
女性たちは洗濯をしに川辺へ出ました。女性は、農作業などの生業の合間に、洗濯のような家事もしながら忙しい一日を過ごします。洗濯機がなかった伝統社会では、棒で洗濯物を強く叩き、染みや汚れを取りました。
春になって凍っていた川が溶け、花びらが川面を流れていくのが見えますね。
春の遊び
川に沿って進むと、春の遊びを楽しんでいる光景が描かれた絵巻きが見えます。春を迎えた文人たちの野遊びの様子を描いた「修禊図巻」という作品です。修禊とは、旧暦3月3日のサムジンナル(上巳)に、流れる水で身体を洗い清める禊を行い、幸せを祈願する儀礼です。展示されている絵には、1853年、ソウルに住む訳官や郷校の教育官など30人の文人が、川で修禊を行った後、詩会を楽しんでいる様子が描写されています。彼らは、川に杯を浮かべ流し、春の景色を詩に詠ったのですが、絵の左側に、その30編の詩が書かれています。
「修禊図巻」の下には、野外で食べる料理を保管する饌盒(チャナプ)があります。持ち運びやすくするため、料理を盛った容器を重ねるようになっています。タバコの葉を保管するタバコ入れと、火打ち石・火打ち金を保管する火打ち袋も見えますね。
農作業の準備
春は一年の農作業が始まる季節です。春になると、農夫たちは豊作を祈りながら春耕を行い、種蒔きをして芽を吹かせます。
春耕は、冬の間凍っていた土地を柔らかくして地力を高める作業です。展示室に様々な春耕の農機具がありますね。左側に展示されている農具は「ソレ(馬鍬)」です。土の塊をこなしたり、地面を掻き均すのに用いられる農具です。ソレに繋がっている逆V字形の木器は「モンエ(頸木)」というもので、このモンエを牛の首に掛けてソレと繋げ、代搔きをします。
ソレの右側にある農具は「セスラン(熊手鍬)」、セスランの前にあるのは「タビ(鋤)」です。セスランとタビは、土を掘り起こしたり均したりする農具で、石や木の根が多く唐鋤(犂)やソレを使いにくい所で主に用いられます。特に、セスランは、泥棒が踏むと柄が勢いよく起き上がって額に大怪我を負わせるといわれ、農家では寝る前に戸口にセスランを置くこともありました。
土地を耕して農作物の栽培に適した状態になると、種蒔きをします。これを播種ともいいますが、種の発芽率を上げるために、種を水に浸してから蒔きました。種を保管する籠や袋が見えます。
農家の生活
農家では、農業以外に何をしながら過ごしたのでしょうか。農家の部屋を見てみましょう。
部屋の中央に、綿がたくさん入っている籠があります。分厚い冬服から取り出した綿です。春の暖かな気候に合わせて、冬服から綿を取り出す作業をしているようです。その左側にあるのは糸車で、棒状に丸めた綿(篠巻き)から糸を紡ぐ時に使う道具です。前の方に、紡いだ糸を巻いたものが見えますね。
旬の野菜料理で彩った春のお膳を見てみましょう。主にキムチのような保存食を食べる冬と違って、万物が蘇る春には、新芽やナムル(若菜)を採り、料理して食べました。
右側を見ると、牛馬の餌を入れる飼い葉桶が見えます。その隣には、鶏の巣として作られた鶏籠がありますね。野獣から鶏を守るために、軒先に掛けました。
農機具
こちらには様々な農機具が展示されています。「サルポ」「トリケ(唐竿)」「メトン(磨り臼)」など、夏や秋に使う農機具が見えますね。このように、春の農作業に用いられない農機具は、家の倉庫に保管しておきました。
この農具は「ケサン(穀打ち台)」です。ケサンは、トリケと同じく脱穀用農具で、作物をケサンに強く叩き付けると、穀粒が落ちます。落とした穀粒は、メトンや「キ(箕)」を使って殻を外し、不純物を取り除きます。壁に掛かっているキに穀粒を入れて上下に煽ると、殻や塵などの不純物は吹き飛ばされ、きれいな穀粒のみが残ります。
左側にある展示品は「莚編み機」です。藁などを編んだ莚は、ジャガイモやサツマイモなどの収穫物を乾かす時に庭に敷いたり、冬には凍結を防ぐために、甕の覆いとして使われました。莚編み機の前にある俵のようなものを「ソム」といいますが、莚を二つ折りにして両端を縫い合わせたものです。秋に収穫された穀物は、このソムに入れて保管します。
ハンアリ(甕)と貯蔵
庭の方へ出てみましょう。様々な大きさや形のハンアリ(甕)が見えますね。ハンアリは、韓国の代表的な食品の一つであるジャン(醤)の貯蔵に欠かせない容器です。特に春になると、ハンアリを綺麗に洗い、新しくジャンを作ります。美味しいジャンを作るためには、暑くなる前に作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
地域によって土壌や気候が異なるので、ハンアリも地域ごとに大きさや形が少しずつ違います。食糧が豊かな全羅道(チョルラド)と慶尚道(キョンサンド)地域のハンアリは、他地域に比べ大型です。また、気候が温暖なため、地面から上がってくる熱の影響でジャンの味が変わらないように、ハンアリの底を狭く作ります。山地の江原道(カンウォンド)では、手に入りやすい木を材料にして、寒さの中でも割れにくい木製の保存容器を作って使用しました。
職人の家具製作
これまで、農家の昼の日常をご覧いただきましたが、ここでは、職人の日常をご覧いただけます。
木を用いて生活道具や家具を作る職人を「小木匠(ソモクチャン)」といいます。小木匠が製作した家具のパンダジと手箪笥がありますね。小木匠は、展示されているようなのこぎり・鉋・槌などを使って美しい木家具を作ります。画面の隣にあるのは「トルテソンゴッ(舞錐)」といい、木材に穴を空けるのに使います。錐の柄に取り付けた横木を上下させて穴を空けます。
右下に、精巧に彫刻された装飾金具が見えます。これは、装飾用や蝶番などとして家具に取り付けられるもので、「装錫(チャンソク)」といいます。装錫を作る職人の「豆錫匠(トゥソクチャン)」は、吉祥文様を刻み、装錫を完成させます。家族の和合を象徴する卍字文様や、寿・福・コウモリ・花などの文様が見えますね。
パンダジ(家具、半閉櫃)
パンダジは、前板を二分して、上半分だけが開閉できるようにした家具で、布団や重要書類などを保管しました。小木匠と豆錫匠が最善を尽くして製作したパンダジが展示されています。
パンダジは地域ごとに特徴が少しずつ違います。地域により、入手しやすい木の種類や好みの模様も異なるからです。
こちらの、精巧で華麗な装錫が際立つパンダジは、平安道(ピョンアンド)で使われたものです。平安道パンダジは、装錫の前面を非常に細かく透かし彫りしたのが特徴で、穴がたくさん空いているという意味で「スンスンイ・パンダジ」とも呼ばれます。主に、平安道の博川(パクチョン)地域で生産されたため「博川パンダジ」とも呼ばれ、シナノキが多く使われました。
全羅道(チョルラド)のパンダジは、装錫の数が少なく、模様が簡潔で端正な趣を感じさせます。江原道(カンウォンド)のパンダジは、額のように縁があり、中央に大きな装錫が付いているのが特徴です。
春のナムル(若菜)採り
春になると、山や野原に出かけ、春のナムル(若菜)を採って食べました。採取したナムルや花などを入れるマンテギ(編み袋)が見えますね。肩ひもが付いているこのマンテギは、肩に掛けて両手を自由に使えるように工夫されたものです。
山菜には毒が含まれている場合があるので、一度茹でて食べますが、茹でたナムルをすくう時には、上の方に展示されている「ナムルすくい」を使いました。すくった後、笊に入れて水気を切ります。
釜の蓋の上を見ると、ツツジの花を載せた焼き餅、ファジョン(花煎)がありますね。旧暦3月3日のサムジンナルに、人々は山や野原に出て、ファジョンや韓国伝統の飲み物であるファチェ(花菜)、よもぎ入りのトック(草餅)などを作って食べながら春を満喫し、一年の健康と豊作を祈りました。
ここまで、朝鮮時代後期の春の一日のうち、昼の風景をご覧いただきました。万物が長い冬眠から目を覚まし、新年を迎える春の昼は、このように慌ただしく過ぎてゆきます。
昼が過ぎ、夕暮れ時になると、人々はどのように過ごしたのでしょうか。引き続き、春のある日の夜の風景をご覧いただきましょう。
日本語翻訳 河閔恵(ハ・ミンヘ)
翻訳監修 中村克哉(なかむら かつ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