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설전시관3 한국인의 일생
출세, 풍류, 회갑, 치유
앞서 조선시대의 성인식인 관례부터 풍산김씨 허백당 문중의 가족 이야기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지금부터는 조선시대의 과거제도부터 환갑까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선시대는 엄격한 신분사회였지만, 과거시험을 통해서 신분상승이 부분적으로 가능했습니다. 학문을 중시하는 유교사회에서는 무관보다 문관을 우대 했는데요. 문과에 급제해서 문관이 되는 것은 개인의 사회적 성공이자 가문의 영광이었습니다. 과거시험에서 문과 중 대과에 합격한 사람에게는 이름과 급제자 성적, 등급이 적힌 최종합격 문서인‘홍패’를 내리는데요. 술과 안주를 하사하며‘어사화’도 함께 내렸습니다. 어사화는 왕이 내리는 종이꽃으로 복두(幞頭)뒤에 꽂아 3일 동안 유가를 하였다고 합니다.
등용문
‘등용문(登龍門)’은 큰 물고기가 물살이 세고 거친 중국의 용문에 뛰어올라 용이 되었다는 고사에서 유래 되어 입신출세(立身出世)의 관문을 상징합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과거시험이 곧 출셋길이었기 때문에 잉어를 새긴 벼루나 잉어그림인‘약리도(躍鯉圖)’․‘연리도(蓮鯉圖)’를 공부방에 걸어두고 과거 급제를 꿈꾸었습니다.
남여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는 의복과 탈 것 등에도 제한이 있었는데요. 이 가마는‘남여(藍輿)’라고 부르며 조선시대 고위관리가 탈 수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 가마를 타고 대궐 문안까지 들어갈 수 있었던 사람은 삼정승(三政丞) 정도였습니다. 이 남여는 3품의 승지(承旨)와 각조의 참의(參議) 이상의 관원이 탔습니다.‘죽여’나‘죽교’라고도 불렀고, 위쪽은 의자와 비슷하고 앞쪽 양쪽에 긴 나무로 된 두 개의 채를 꿰어 붙이는데, 포장이나 덮개가 없습니다. 앞뒤에서 두 사람이 어깨에 메서 이동했는데 손으로 들기도 했고, 주로 산길 등의 좁은 길을 갈 때 이용 하였습니다.
무관
무관(武官)은 병서와 활쏘기 등의 무예 기술을 시험하는 무과시험 출신의 관리를 말합니다. 무관은 정3품인 절충장군까지만 올라갈 수 있어서, 우두머리는 모두 문관이 겸직하였습니다. 무관직은 비록 문관직에 비해 차별을 받기는 했지만, 임진왜란 이후 매년 실시되는 무과 시험과 완화된 응시자격 등으로 하층민에게 신분상승의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초상화의 주인공은 1800년 경상우도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역임했던 민광승(閔光升, 생몰연대 미상)입니다. 조선시대 문관과 무관은 관복의 가슴과 등에 붙이는‘흉배(胸背)’에 차이를 두어서 지위를 나타냈는데요. 3품이하의 당하관(堂下官)은 단호(單虎)흉배, 3품 이상 당상관(堂上官)은 쌍호(双虎)흉배를 다는데, 문무 관리들의 흉배 제도는 1505년(연산군 11)에 1품에서 9품까지 모두 흉배를 달기 시작하여 1910년까지 시행하였습니다.
문관
문관(文官)은 유학 경전에 대한 지식과 논술을 시험하는 문과 시험 출신의 관리를 말합니다. 조선시대에는 학문과 유학을 숭상하여 무관보다는 문관을 우대하였습니다. 문관은 최고 정1품 영의정까지 올라 조정의 인사권 뿐만 아니라, 군사지휘권까지도 장악 하였습니다. 그래서 문과시험을 거쳐 문관직에 나아가는 것을 최고의 출세이자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문관흉배는 3품 이상은 두 마리 학이, 3품 이하는 한 마리 학이 수놓아져 있습니다. 여기 보이는‘단령(團領)’은 문관이 평상 집무시에 입은 관복으로 목 부분의 깃이 둥근 것이 특징이며, 일반적으로 아래 보이는 관복함에 넣어서 보관하였습니다.
패옥과 후수
패옥(佩玉)과 후수(後綬)는 왕․왕비의 법복(法服)이나, 관리들의 조복과 제복을 입을 때 양 옆과 뒤에 차는 장식물입니다. 패옥은 양 옆에 늘어뜨렸는데, 모양이 다른 여러 개의 옥[(형(珩)․거(琚)․우(瑀)․황(璜)․충아(衝牙)]을 푸른 비단주머니 속에 넣어서 찼습니다. 관리용 후수는 관직의 등급에 따라 자수무늬와 둥근 장식이 달랐는데요. 1․2품은 운학문(雲鶴紋)에 금환(金環)을, 3품은 반학문(盤鶴紋)에 은환(銀環)을, 4품은 연작문(練鵲紋)에 은환(銀環)을, 5․6품은 연작문(練鵲紋)에 동환(銅環)을, 그 이하는 계칙문(鸂鶒紋)에 동환(銅環)을 달았습니다. 후수는 백색 비단끈인 대대(大帶)에 달아서 허리에 매었습니다.
만인산
만인산은 고을 사람들이 지방 관리의 공덕을 기리며 감사의 표시로 바친 일산(日傘)을 말합니다. 전 고을 사람들의 이름을 새겼다고 하여 ‘천인산(千人傘)’혹은‘만인산(萬人傘)’이라고도 하며 비단에 이름을 자수로 놓았다 해서‘수산(繡傘)’이라고도 합니다. 일산은 원래 수령이나 감사가 외직으로 나갈 때 햇볕을 가리는 의장(儀仗)의 하나였으나, 조선 후기에는 송덕비와 함께 수령의 공덕을 기리는 기념품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만인산은 1887년 평안북도 희천군 고을 사람들이 희천 군수 김영철의 공덕을 기리며 바친 것입니다.
풍류
조선시대 양반들은 일상생활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휴식하면서 풍류(風流)를 즐겼습니다. 깊은 산속 초당(草堂)에서 홀로 거문고를 어루만지며 시를 읊거나 친척, 친구들과 경치 좋은 곳에서 노래와 춤으로 친목을 다졌습니다. 판소리나 거문고 같은 악기 연주를 감상하면서 술을 마시거나, 시를 주고 받고 그림도 감상하면서 사대부로서의 소양을 길렀습니다. 또한 바둑, 장기, 투호 등으로 여가를 즐기며, 산과 들에서 활쏘기를 하면서 심신을 단련하였습니다.
풍류-놀이
조선시대 양반들이 즐겨 놀았던 놀이 도구들이 있는데요. 쌍륙(雙六)은 두 사람 또는 두 편으로 갈라서 차례로 주사위를 던져서 말을 이동하여 적진에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입니다. 주사위를 던져서 나오는 눈이 6.6이면 반드시 이긴다고 해서‘쌍륙(雙六)’이라고 부르는데요, 말은 1에서 6까지 새겨진 주사위 2개를 굴려서 나온 숫자에 따라 이동합니다. 이 놀이는 서역(西域)에서 유입되어 주로 궁중이나 양반가에서 행해졌다가 조선시대에는 널리 보급되어 정초나 명절날 즐겨 놀았습니다. 장기나 윷놀이가 일반서민들도 즐겼던 대중적인 놀이였다면, 바둑이나 쌍륙 ․ 투호 ․ 승경도(陞卿圖)는 상류층 중심으로 즐기던 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풍류-활쏘기
활쏘기는 일정한 거리에 과녁을 세워 놓고 활을 쏘아 맞히는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 놀이였습니다. 예부터 활쏘기는‘사예(射藝)’라고 하여 사대부가 반드시 익혀야 할 무예의 하나로 인식되어서, 단지 심신을 단련할 뿐만 아니라 사대부의 덕행을 수양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일상에서 벗어나 활쏘기로 사냥을 즐겼고, 마을마다‘향사례(鄕射禮)’라는 활쏘기 의식을 치르면서 사대부 간의 친목을 도모하였습니다.
풍류-서화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학문적 수양으로 관직에 나가는 것을 출세로 여길 뿐만 아니라 시(詩)․서(書)․화(畵) 모두에 능한 것을 최고의 재주로 여겼습니다. 시나 글을 쓰는 것은 관직 생활에 필요한 기초 지식이었지만, 자기의 감정을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도 사대부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었습니다. 그래서 종종 일상생활을 벗어나 경치 좋은 곳에서 서로 글을 주고받거나 그림을 감상하면서 서로의 기량을 겨루었으며, 이러한 모임을 기념하여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 계회도(契會圖)로 남기기도 했습니다.
풍류-악기
풍류 전시장의 중앙에 악기들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악기 앞에 있는 음성기를 통하여 악기의 연주를 직접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거문고는 6줄의 현악기로 소리가 깊고 장중하여 예로부터‘백악지장’이라고 하였고, 학문과 덕을 쌓은 사대부들 사이에서 널리 사랑을 받았습니다. 가야금은 12줄의 현악기로 소리가 맑고 우아해서 아악과 민속악에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대금은 가로로 부는 관악기로 청아한 음색과 독특한‘청(淸)’소리로 인해 독주 음악으로 많이 연주되었습니다. 장구는 긴 통 양쪽에 복판을 붙여 채와 손 등을 이용해서 치는 타악기입니다. 향피리는 세로로 부는 관악기로 음량이 커서 대풍류에 주로 사용합니다. 단소는 퉁소보다 작은 악기로 세로로 부는 관악기이고, 아쟁은 7줄의 현악기인데 길고 낮은 저음으로 합주 음악에 사용되었습니다. 해금은 2현의 현악기로 현과 현 사이를 문질러 소리 내는 앙앙거리는 독특한 음색으로 인해‘깡깡이’라고도 부릅니다.
치유
조선시대에는 병이 들거나 몸이 허약해지면 한약방에서 치료를 하였습니다. 한약방에서는 주로 중국의 의학서를 참고하였지만, 허준(許浚)의 『동의보감(東醫寶鑑)』이 보급되면서 병의 증상에 따라 침을 놓거나 뜸을 뜨고, 약재를 조제하여 병을 치료하였습니다. 그러나 한방으로도 낫지 않을 때에는 굿이나 부적(符籍)과 같은 주술(呪術)등의 초자연적인 힘에 의지하여 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고자 하였습니다.
침구
한방에서는 인체에 5장 6부(五臟六腑)가 있어서 기능이 서로 조화되면 건강하지만, 조화가 깨지면 병의 증상이 나타난다고 여겼습니다. 이에 해당 경락의 경혈을 골라서 막힌 기(氣)와 혈(穴)을 풀어주면 장부의 기능도 조화를 이루게 된다고 하여 혈점에 침을 놓아 치료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주요 반응점 365경혈 및 이 반응점을 연결한 경로인 14경락을 표시한 인체도[經絡圖, 經穴圖]와 사람 형상인 동인(銅人)을 만들어서 침술을 익혔습니다. 한약방에서 쓰는 약재와 도구들을 볼 수 있는데요. 약을 조제하기 위해 필요한 약재 이름과 분량을 적은 약방문이 있고, 약재 무게를 재는 약저울, 약재를 빻거나 갈 때 쓰는 약연(藥碾), 약재를 자르는 약작두, 한약재를 달일 때 사용하는 약탕기, 이외에도 약틀, 약사발도 볼 수 있습니다. 박물관에 오시면 한약 재료가 들어 있는 서랍을 열어서 실제 약재들을 보면서 약재향을 맡아 보실 수도 있습니다.
한약방
한약방은 의원이 약물과 침구술(鍼灸術)로 환자를 치료하는 의원(醫院) 겸 약방을 말합니다. 조선시대에는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과 『동의보감(東醫寶鑑)』이 편찬되어 민간에 보급되고, 침구술의 발달과 함께 사람의 체질을 네 가지로 분류한 사상(四象)체질 의학이라는 새로운 의학이 나와 우리의 독자적인 의학기술로 한약방을 운영하기도 하였습니다. 한약방에서는 의원이 환자를 진맥하고 있고, 옆방에서는 약재를 약작두로 손질하고 있는 모습을 재현해 놓았는데요. 병이 들거나 허약해지면 한약방에서는 이렇게 맥을 짚어서 약을 처방하고 침을 놓거나 뜸을 떠서 병을 고쳤습니다. 『동의보감』은 현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굿청
특별한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았던 조선시대는 천연두와 홍역이 가장 무서운 질병이었습니다. 이를 예방하거나 다스리기 위해 무당을 불러서 별상굿이나 호구굿을 하고 마을에서는 마마배송굿을 하였습니다. 여기에 재현한 굿청은 홍역을 다스리기 위한 호구굿을 하는 장면입니다. 이러한 무속신앙은 개인과 가정, 마을 공동체의 어려움을 해소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때론 인간의 삶 속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나 질병을 막아주기도 합니다. 굿은 무당이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노래와 춤으로써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 달라고 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서는 무당이 굿을 할 때나 점을 칠 때 사용하는 무구들을 볼 수 있는데요. 혼령을 불러 모실 때나 무당이 춤출 때, 그리고 신령이 오셨을 때 주로 사용하는 성수부채와 방울이 있고, 동서남북 중앙의 방위를 지키는 신을 상징하는 오방신장기(五方神將旗)가 있습니다. 오방신장기의 오색은 우환(憂患), 명복(命福), 재수(財數), 죽음(死) 그리고 조상(祖上) 등의 운명으로 상징되고 있습니다.
주술과 점복
한방으로도 낫지 않을 때는 굿이나 부적과 같은 주술로 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기도 하였는데요. 인간이 초자연적인 힘을 빌어서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고자 할 때 행하는 원초적인 방법이 주술(呪術)입니다. 주술은 세시풍속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주로 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기 위해 무당의 능력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한 귀신이나 재앙을 쫒고 복(福)을 부르기 위해 부적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앞일을 미리 알고 싶어서 점통의 내용으로 점을 치는 작괘점(作卦占)이나 사람의 얼굴과 손금을 보아 그 사람의 일생을 판단하는 관상점(觀相占)등을 보았습니다. 왼쪽에 전시된 매 그림 부적에서 매는 하늘 세계를 오가는 영험한 새로 병이나 액운을 가져가라는 의미로 그려 넣습니다. 아래쪽의 당사주(唐四柱)는 사람이 태어난 해와 월․일․시를 의미하는 사주를 토대로 한 사람의 평생 운세를 주역(周易)에 맞추어 풀이한 책입니다. 제웅은 짚으로 만든 사람의 형상인데요. 추령(芻靈) 또는 처용(處容)이라고도 합니다. 나이에 따라 운수를 맡아보는 아홉 직성 중 나후직성(羅睺直星)또는 제웅직성(直星)이라고 하는데 9년마다 한번씩 온다고 합니다. 제웅직성이 든 사람은 음력 정월 14일에 제웅을 만들어 옷을 입히고, 그 머리에 이름과 출생한 연도의 간지를 적은 종이와 돈을 넣어서 길가에 버립니다. 그러면 그 해의 액을 막을 수 있다고 합니다.
회갑
현재는 60세에 환갑잔치를 하는 일이 거의 없지만,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만 60세 생일이 되면 회갑(回甲) 또는 환갑(還甲)이라 하여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당시 60세 이상은 장수(長壽)를 의미하므로, 자손들은 이를 영광스럽게 여겨 친척과 친구들을 초대하여 생일을 기념하였습니다. 잔칫날에는‘백수백복도(百壽百福圖)’병풍을 쳤는데 백수백복도는 백개의 수(壽)자와 수많은 복(福)자를 반복해서 그려넣은 병풍으로 부모님이 그만큼 장수하고 복을 많이 가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회갑상을 차려 집안 어른의 장수를 축하하고, 술을 올리고 절을 올리며 만수무강(萬壽無疆)을 기원하였습니다. 회갑상은 다른 잔칫상과 달리 효심을 나타내고자 밤, 대추 등의 과일을 높이 쌓아올리고,‘기쁠 희(囍)’․‘목숨 수(壽)’등 기원하는 글자를 장식하였습니다. 회갑상은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잔치이므로 남자는 동쪽에, 여자는 서쪽에 앉습니다. 회갑상 앞에는 술과 잔이 놓인‘헌주상(獻酒床)’을 따로 놓고, 자손과 친척들이 나이순으로 잔을 올리고, 부모님께 큰절로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조선시대의 과거제도부터 환갑까지의 모습을 살펴보셨습니다. 다음은 조선시대 양반사대부들의 죽음부터 그 이후의 모습까지 즉, 상례와 제례에 관하여 살펴보시겠습니다.
Permanent Exhibition 3 Korean Life Passages
State Examinations · The Sixtieth Birthday
We have seen important moments in the adulthood of nobles, such as the coming of age ceremonies and marriage. Now, we are going to look at the key aspects of midlife in traditional society.
The Joseon Dynasty was a strictly hierarchical society. However, it was not completely impossible to climb the social ladder. Passing the state examination opened doors. Back then, people respected government officials more than military officers, because it was the government officials who specialized in Confucianism, the founding ideology of the Joseon Dynasty. Therefore, becoming a government official by passing a state examination was not only a personal achievement but also a great honor for the entire family. Those who passed the final tests of the state examinations were bestowed with a hongpae, a red-colored certificate, on which their final scores and ranks were recorded. Along with the hongpae, they received paper flowers called eosahwa. They inserted them behind their hats, bokdu, and paraded for three days greeting their families, neighbors, and exam invigilators.
The Gateway to Success
Literally, deungyongmun means ascending the Yongmun Valley. It was derived from an old Chinese story about a pile of carp that swam up a waterfall in the Yongmun Valley to become dragons. So, in everyday life, this expression was used to describe the gateway to success. Back in the Joseon Dynasty, Confucians studied very hard to pass state examinations, which was not only a personal achievement but an honor for one’s entire family. They hung a painting of carp fish in their study rooms in the hope of passing the examinations.
Officials’ Sedan Chairs
During the Joseon Dynasty, dress and transportation were restricted according to people’s social statuses. Only the three prime ministers were allowed to enter the palace riding on palanquins. This sedan chair was called a namyeo. The officials whose rankings were higher than senior third rank could ride on this. Its upper part was similar to that of a wooden chair with arms but no legs, and it had two long wooden bars attached to each side. It had no cover and was mainly used to go through narrow roads, such as mountain roads. People carried it on their shoulders or lifted it with their hands.
Military Officers
Military officers, mu-gwan, were the people who passed the military examination, mugwa, which tested military skills, including Korean archery and military tactics. Back in the Joseon Dynasty, it was forbidden for military officers to be promoted higher than senior third rank. Government officials concurrently served as the heads of military organizations.
Although military officers were discriminated against compared to government officials, for being lower class people, becoming a military officer was an opportunity to improve their social status. After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the military examination started to be held annually, and the eligibility requirements for the examination were eased, which led to an increase in the number of lower class applicants.
The man in this portrait is Min Gwangseung, a military officer who served as a provincial military commander of the west Gyeongsang province in 1800. On his chest, we can see a rank badge called a hyoongbae. The ranks of the government officials and military officers were represented through the rank badges on their uniforms. The military officers who were lower than senior third rank had one tiger on their rank badges, while those who were higher than that had two tigers. This rank badge system was first implemented in 1505 and lasted until 1910.
Government Officials
Government officials called mun-gwan had the chance of being promoted to prime minister and had the right to appoint officials and manage other personnel and even command military troops. Therefore, people considered it a great honor to pass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s and become government officials.
Since government officials specialized in Confucianism and writing, the exams tested knowledge of Confucianism and writing skills in prose, poetry, and essays. They needed to study these because they were deemed important for those in positions of leadership.
The symbol of government officials was the crane. Their rank badges were embroidered with one or two cranes. People whose government posts were higher than senior third rank wore uniforms with two cranes embroidered, while the others wore uniforms with one crane. This round-neck robe is a danryeong. It was an official uniform of civil and military officials. When not in use, it was kept in the box below.
Pairs of Jade Pendants and Court Aprons
In this showcase, we can see a pair of jade pendants and a court apron. These ornaments were hung over the ceremonial robes of kings, queens, and government officials. A jade pendant, a paeok, consisted of five different shaped jades and was put in a small, blue silk bag and hung on both sides of the robes.
The patterns and ornaments of the court aprons (husu) were indicators of bureaucratic rank. The cloud and crane pattern and gold rings represented the officials in senior first and second ranks. The crane pattern and silver rings represented those in third rank. The shrike pattern and silver rings were for fourth rank officials, while the shrike pattern and bronze rings were for those in fifth and sixth ranks. Finally, the goosander pattern and bronze rings represented other officials.
Officials’ Parasols
During the Joseon Dynasty, it was customary for people to present a parasol to their local officials to express gratitude for their hard work. The parasol was made by embroidering the names of each villager on its canopy, so it was also called a cheoninsan (a thousand people’s parasol), maninsan (ten-thousand people’s parasol), or susan (an embroidered parasol).
Originally, parasols were used to protect the governors from the sunlight and heat when they were travelling for work, but around the late Joseon Dynasty, some governors regarded them as souvenirs to praise what they did for the villagers. The parasol in this showcase was offered to Kim Yeongcheol, the governor of Huicheon, Pyeonganbuk-do, in 1887.
Elegant Tastes
What kinds of activities did the nobility do in their free time? This section presents the various activities that the noble class of the Joseon Dynasty, the yangban, enjoyed while they were not working or studying.
Sometimes, they played traditional instruments and recited poems in their cottages deep in the mountains. At other times, they hung out with friends at scenic spots. Here, we can see displayed items such as musical instruments, poems, and sets of bows and arrows that are evidence of the elegant tastes of the nobility.
Traditional Games
There are various game items in this showcase. This strategy game was ssang-ryuk, meaning double-six. The rules of the game were as follows: two players or two teams threw two dice and moved their tokens according to the numbers rolled. The player or team to first enter the counterpart’s territory won the game. In this game, if the numbers rolled were both 6, it automatically led to a win. Introduced from East Asia, this game was initially popular among the royal families and the nobility. Around the late Joseon Dynasty, however, it spread much more widely and commoners came to enjoy it. It was played mostly on special holidays such as New Year’s Day.
We can also see other games here, among which janggi (Korean chess) and yut-nori (a Korean board game with four wooden sticks) were played by commoners, while baduk (another kind of Korean chess) and tuho (an arrow-throwing game) were generally enjoyed by the nobility.
Archery
Archery has been a Korean traditional sport for a long time. Koreans have enjoyed shooting arrows at far targets. From ancient times, archery had been regarded as the Confucians’ martial art, so Confucians necessarily practiced it to train their minds and bodies. They went hunting as a way of improving their archery skills and joined village archery clubs to practice archery and build relationships with other Confucians.
Painting and Calligraphy
Besides academic and social success, Confucians regarded their mastery of poetry and painting as other great achievements. Writing prose was needed for officials’ work, while painting and writing poems were necessary to express their emotions and appreciation for nature.
They went on picnics to write poems and paint beautiful landscapes, after which they compared their artwork with each other to improve their skills.
Musical Instruments
There are various musical instruments in the center of this showcase. We can listen to their melodies through the speakers in front of us. This is a geomungo, a Korean traditional instrument with six strings. A geomungo was called the king of all musical instruments, because of its deep, overwhelming sound and was widely loved especially by Confucians. A gayageum had twelve strings and was well-known for its clear and elegant sound. It was mostly played in court music and folk music.
The next one is a daegeum, a transverse flute that was usually played in solo music. It featured a unique buzzing (cheong) sound. And here we can see a janggu, an hourglass-shaped drum. People played it by tapping both sides with their palms or a thin, wooden stick, a chae.
This small pipe called a hyang-piri was a longitudinal flute that made a loud sound. The danso, next to the hyang-piri, was another longitudinal flute.
This seven-stringed instrument is an ajaeng. Its low, rich sound meant it was perfect for ensembles. A haegeum had two strings and was called a 'kkang-kkang-i' because of the unique tone made by rubbing between its strings.
Healing Diseases
Back in the Joseon Dynasty, when people got sick, they visited Korean traditional medicine clinics. In old times, doctors usually referred to Chinese medical books to diagnose and cure their patients. But after Donguibogam, the Korean medical encyclopedia, was published in 1610, they practiced various therapies from that book, such as acupuncture, moxibustion (a heat therapy), and herbal medicines. When these medical therapies were found to be ineffective, some people relied on supernatural powers such as talismans or shamanic rituals (gut) to prevent and cure diseases.
Korean Medicine
According to oriental medicine, every human had five viscera (a heart, a liver, a spleen, lungs, and kidneys) and six organs (a large intestine, a small intestine, a gallbladder, a stomach, a bladder, and a triple burner (an organ that controlled overall metabolism)). A human body would be healthy if all of these organs were in a harmonious state, but if they were not, a person could become ill. To prevent and cure diseases, people thought that we should stimulate blood circulation and the flow of bodily energy (Qi, 氣) to excrete toxins through acupuncture. Therefore, doctors studied the major vital points of the human body and the bloodstream. When they studied, they referred to Inche-do, the painting of the human body, which was marked with 365 vital points and the 14 meridian points that connected those vital points.
In the next section, we can see various medicinal herbs and tools for making medicines. There is a scale, an herb grinder, an herb cutter, and a boiling pot. And if you open these drawers, you can smell the medicinal herbs.
Korean Medical Clinics
This building is a Korean medical clinic. Back then, a medical clinic was not only a hospital but also a pharmacy, where doctors diagnosed their patients and cured them with medicine and acupuncture. Around the late Joseon Dynasty, the Korean medical books Hyangyak-jipseongbang and Donguibogam were distributed to commoners. The latter, the Donguibogam has been designated as a UNESCO Memory of the World.
Along with the development of acupuncture, a new Korean medical discipline, Sasang Constitutional Medicine, was also launched. This categorized human constitutions into four body types: Tae-yang, Tae-eum, So-yang, and So-eum.
Shall we take a look inside? In this room, a doctor is diagnosing a patient by feeling his pulse while a man in the next room is cutting herbs to make medicines.
Exorcism for Curing Diseases
In the Joseon Dynasty, smallpox and measles were the most terrifying diseases because no remedies had yet been found. So, to cure these diseases, some people relied on shamanism. They asked shamans to perform gut. A gut was a ritual where a shaman requested gods to solve problems by singing, dancing, and offering sacrifices. What we are watching on this screen is a video of a gut to prevent measles. This shamanism functioned to help solve the difficulties of individuals, families, and communities. It was believed to prevent future problems or diseases that were difficult to solve by human efforts alone.
We can see shamans’ tools in this showcase. This female shaman is holding a ritual fan and ritual bells, which were mostly used to call the spirits. These five-colored flags symbolized the gods of five directions: East (blue), West (white), South (red), North (black), and Center (yellow), which respectively represented misfortune, a blessing, good fortune, death, and one’s ancestors.
Divination and Fortunetelling
Other than the gut, there were two other forms of divination: talismans and fortunetelling. People tried to predict others’ futures by reading their facial features or hand lines. Or, they drew lots out of a divination bottle and interpreted what the results meant.
We can see a hawk in this talisman. In Korean folk religion, a hawk was a spiritual animal that had the power to drive out disease and misfortune. The book underneath this talisman was a fortune-telling book that predicted the fate of a person by his or her birth year, month, day, and hour. It was based on the classic, The Book of Changes.
This straw object was a jewoong, an effigy woven with straw in the form of a human. This effigy originated from a myth about jikseong (直星), the stars that were believed to control a person’s fate according to one’s age. There were nine jikseong, among which a nahu-jikseong (or jewoong-jikseong) meant bad luck and misfortune. This nahu-jikseong came around every 9 years. The person whose age lay under the control of nahu-jikseong made an effigy, put a note of his or her name, birth zodiac, and money into it, and discarded it on the roads. People believed this custom would prevent bad luck that year.
The Sixtieth Birthday
Nowadays, it is hard to find a person who holds a big party for his or her sixtieth birthday. But, until the 1980s, most Koreans placed great importance on their sixtieth birthdays and held big parties. Because living until the sixtieth birthday was not common in the past, people who lived this long felt blessed and wanted to celebrate it with their relatives and friends.
On this occasion, people set up a folding screen, on which the Chinese characters 壽 and 福 were repeatedly written, to wish for longevity and good fortune. The offspring of the sixty year old set up a big birthday table with delicious food and bowed deeply before the birthday person wishing for their longevity and happiness.
The food in the front row of this table is piled high. To represent love and respect toward their parents, fruits and snacks were piled up and decorated with the characters for 囍 (happiness) and 壽 (longevity). Men sat on the east and women on the west side of the table. In front of this big food table, there is a small table with liquor and a few glasses. Offspring offered glasses of liquor to the birthday person and took deep bows wishing them a good life.
This concludes the part on the midlife of the nobility in the Joseon Dynasty. Next, we will look at how noble seniors ended their lives and were remembered.
Translator: Hyeongmin KO
Copy Editor: Jocelyn WRIGHT
Changhyun OH
第三展厅 韩国人的一生
出世, 风流, 花甲, 治疗
之前,我们观览了朝鲜时代的成人仪式冠礼,以及丰山金氏虚白堂门宗的家族故事等等。从现在开始,参观朝鲜时代的科举制度和花甲礼俗。朝鲜时代虽然是严格的等级社会,但部分可以通过科举考试实现身份的提升。在崇尚儒学的社会里,文官比武官更受重视。文科及第后当上文官既是个人在社会上的成功,也是家族的荣耀。科举考试中,文科大科及第者将被授予最终合格证“红牌”,上面写有及第者的姓名、成绩和等级。另外还有国王赐的美酒佳肴,以及“御赐花”。御赐花是君王赏赐的纸花,状元将其插在幞头后面,游街三日。
登龙门
“登龙门”源于中国鲤鱼跃龙门的典故,象征立身出世的关口。朝鲜时代人们相信科举考试是出仕唯一的道路,因此人们在自己的书房里摆上刻着鲤鱼的砚台或挂上“跃鲤图”、“莲鲤图”,寄望一举中第,飞升龙门。
蓝舆
朝鲜时代是讲究身份制度的社会,按照身份不同,官员的服饰和乘坐的轿舆也各不相同。这顶轿子是朝鲜时代高级官吏乘坐的“蓝舆”。当时三政丞以上的高级官吏才能乘坐轿子到达宫廷大门。这顶蓝舆是三品的承旨和各曹的参议以上的官吏才能乘坐的。蓝舆又称为“竹舆”或“竹轿”,轿的上部像一把椅子,前面两侧贯连两根长杆,没有帷帐或顶盖,前后各有两人肩挂绳带抬轿,有时也用手扶抬,一般走窄胡同或者山路时使用。
武官
武官指的是通过兵书和射箭等武艺考试,武举出身的官吏。当时武官最高只能升到正三品折冲将军,其上司都由文官兼职。虽然武官职和文官职相比较起来待遇不平等,但是壬辰倭乱以后每年举行武举考试并且放宽应试资格限制,这样给下层阶级提供了提升身份的机会。这幅肖像画的主人公是1800年曾任庆尚右道兵马节度使的闵光升(生卒年不详)。朝鲜时代文官和武官官服前胸和后背上的补子“胸背”上存在差异,以此体现地位的不同。三品以下的堂下官是单虎胸背,三品以上的堂上官则是双虎胸背。文武官吏从正一品到正九品都施行胸背制度,这是从1505年( 燕山君 11年)开始的,一直延续到1910年。
文官
文官指的是通过有关儒学的经典知识和论述考试,文举出身的官吏。朝鲜时代崇尚学问和儒学,文官比武官更受重视。文官最高可至正一品领议政,不仅掌握有朝廷的人事权,而且甚至掌握军事指挥权。因此,通过文官考试获得文官官职被认为是最佳的功名之路,非常荣耀。三品以上的文官为绣有两只鹤的胸背,三品以下的则为一只鹤。这里的“团领”是文官平时办公时穿的官服,特点是脖领是圆的,一般都放入下面这个官服箱中保管。
佩玉和后绶
佩玉与后绶是国王与王后的法服,或者官员朝服与祭服上的装饰物,垂吊在两侧与后摆上。佩玉垂挂在衣服的两侧,是将形状不同的玉(珩·琚·瑀·璜·冲牙)装进青色的绸缎袋子里后佩戴。官员们的后绶按照官职等级的不同刺绣花纹与环饰也不同。一品与二品官服云鹤纹上用的是金环,三品官服盘鹤纹上用的是银环,四品官服练鹊纹上用的是银环,五品与六品官服练鹊纹上用的是铜环,以下官员官服鸂鶒纹上用的是铜环。后绶要挂在白色的绸带大带上,系在腰上。
万人伞
万人伞是指地方民众为了纪念并感谢地方官吏的功德而做的日伞。日伞上绣有当地全体民众的名字,所以又被称为“千人伞”或者“万人伞”。而且,因为日伞是在绸缎上绣名字,所以也叫“绣伞”。日伞本来是守令或监司在赴任地方官时,用来遮挡日光的仪仗之一。朝鲜后期,日伞与颂德碑一起成为纪念守令功德的纪念品。这把万人伞是1887年平安北道熙川郡的民众为纪念熙川郡守金永喆的功德而做的。
风流
朝鲜时代两班贵族喜欢摆脱日常生活,憩息在大自然里,享受自由潇洒的风流。在深山茅屋里独自弹奏玄琴,吟诗,或者与亲戚朋友在景色优美的地方一起载歌载舞,增进感情。两班贵族一边欣赏盘索里或者玄琴之类的乐器演奏,一边喝酒,吟诗唱和,舞文赏画,以此怡情养性,陶冶性情。还玩围棋、象棋和投壶等游戏,并在山野里射箭,以此磨练心性。
风流-娱乐活动
朝鲜时代两班贵族们喜欢的娱乐项目有围棋、象棋、投壶和射箭等等。双六是两个人或者若干人分成两方,按顺序扔骰子后移动棋子,率先进入对方阵营的那一方就是赢家。扔出的两个骰子如果数字都是六的话,肯定会赢,所以称为“双六”。这种游戏从西域传入,主要流行于宫中与两班贵族之间,朝鲜时期普及开来,过年过节时大家都很喜欢玩儿这些游戏。象棋与掷柶游戏是大众喜闻乐见的娱乐活动,围棋·双六·投壶和升卿图是上流阶层喜欢的娱乐活动。
风流-射箭
射箭是在一定远的距离放置靶子,拉弓放箭,利用弓的弹力将箭射出后击中靶子的活动。射箭是韩国传统的娱乐活动。自古以来,射箭也被称为“射艺”,是朝鲜士大夫一定要精通的武艺之一。射箭不仅被认为可以修身养性,还被认为可以陶冶道德品行。所以士大夫喜欢脱离日常生活去射箭。每座村庄都会举办“乡射礼”,以增进士大夫之间的情谊。
风流-书画
朝鲜时代士大夫们不仅认为研修学问是为了出人头地,而且把擅长诗·书·画视为顶尖才能。写诗或写文章是为官的基本素养,而能把自己的感情在字里或者画里体现出来也是两班贵族应该具备的才能。所以士大夫们不时远离日常生活,到风景优美的地方一起作诗赏画,唱和竞技。为了纪念这种聚会,他们留下了用文字和图画记录这一场面的作品契会图。
风流-乐器
这一展区的中央摆放有乐器,通过乐器前面的音箱可以亲耳听到演奏乐器的声音。玄琴是一种六弦乐器,琴声深沉庄严,自古以来有“百乐之丈”的美称,深受德学兼备的士大夫们的喜爱。伽倻琴是一种十二弦乐器,琴声清越优雅,广泛用于雅乐和民乐。大笒是一种横吹管乐,以其清雅的音色与独特“清”音,多用于独奏。长鼓是一种在长筒两端贴上鼓板,用槌与手敲打的打击乐器。乡筚篥是一种竖吹管乐,音声洪亮,主要用于大风流(指以竹制管乐为主编排的演奏)。短箫是一种小于洞箫的竖吹管乐。牙筝是一种七弦乐器,因音色低长多用于合奏。奚琴是一种两弦乐器,因弹拨时弦与弦之间发出的咿咿呀呀的独特音声,又被称为“吭吭”。
治疗
朝鲜时代,生病或者体弱时一般去看传统韩医。韩药房主要参考中国的医书,不过朝鲜名医许浚编撰的医书《东医宝鉴》得到普及后,开始对症治疗,或扎针或者艾灸,配制药剂治疗。可是,遇到韩医无法治愈的情况时,也会借助跳神、画符等咒术之类的超自然力量进行疾病的预防或治疗。
针灸
韩医认为人体有五脏六腑,如果脏腑之间功能谐调,则人是健康的,如果功能失调,人就会生病。因此,找到人体经络线上的穴位,往气脉堵塞的穴位上扎针,可以打通穴位,使脏腑功能恢复协调。所以,人们将人体的三百六十五个穴位和连接这些穴位的十四条经络绘制成人体经络图(或称经穴图),还制作了人体模样的铜人学习和练习扎针法。这里可以看到韩药房用的药材及相关器具。这是药方,上面写有药名与剂量以便制药。也有称药的药秤、磨药的药碾子、切药的药切刀和熬药的药罐子,此外还有用来榨药的模具及药碗。来到国立民俗博物馆的话,打开药橱的抽屉可以亲眼看到韩国药材,同时闻到药材的味道。
韩药房
韩药房是医生用药品及针灸术来治疗病人的医院兼药房。朝鲜时代,《乡药集成方》和《东医宝鉴》编修完成,并在民间得到普及。随着针灸技术的发展,诞生了将人的体质分为四种类型的四象体质医学。还建立起了利用这门韩国独创新技术治病救人的韩药房。这里再现了韩药房里的情形,医生为患者诊脉,旁边的房间里有人正在用药切刀切药。人们生病或体弱时来韩药房里治病,诊脉,开药,再接受针灸治疗。《东医宝鉴》已经被联合国教科文组织指定为“世界记忆文献遗产”。
跳神场
朝鲜时代没有什么特别的治疗方法,天花与麻疹是最可怕的疾病。为了预防或治疗这两种病,人们请来巫女,跳神驱病,克服痘疹,村里还举行送天花娘娘的仪式。这里展示的是为了治愈麻疹请巫女跳神的场面。这种巫俗信仰承担了为个人、家庭与村落排忧解难的角色。有时巫俗信仰也用来解决人们生活中处理不了的难题或者疾病。跳神是一种巫术活动,由巫婆向神供祭品后,边唱边跳,祈求神灵显灵消灾解难。这里有巫婆跳神和占卜时用的巫术道具。比如叫魂、跳舞和请神时,巫女用的圣绣(音)扇子(指绘有众神降临的折扇)与铃铛。还有象征守卫东南西北中五个方位神灵的五方神将旗。旗的五色分别代表忧患、命福、财运、死亡和祖先等等运势。
咒术与占卜
朝鲜时代遇到医术治不好的情况时,用跳神或画符等巫术手段预防和治疗疾病。咒术是借助超自然的神秘力量以达到某种目的的原始方术。虽然咒术也表现为一种岁时风俗,但更多的情况是人们为了预防或者治疗疾病去求助巫女的神力。还有人求符箓以辟邪攘灾,趋利祈福。另外,朝鲜时代有用抽签算卦的方式占卜未来运势,或者用看面相或手相的方式算命。这里左边的符箓画的是雄鹰。鹰是能来往上天与人间的神鸟,可以消除疾病与厄运。下面的唐四柱是以人的生辰八字为基础,将人一生的运势与周易结合起来进行推算解读的算命书。这个稻草做的人偶叫刍灵,又称处容草人。人们认为随着年龄的增长,行年轮值的直星也不同,九星中的罗睺直星和刍灵直星每九年出现一次。逢到的刍灵直星行年轮值的人,要做一个刍灵草人,给它穿上衣服,把写有名字与出生日期的纸条和钱放入草人的脑袋里,然后将它扔到路边,认为这样可以阻挡那一年的厄运。
花甲
现在过六十岁大寿的人很少,但是到1980年代为止,人满六十周岁都要过大寿,摆花甲宴,又称回甲或还甲。以前六十岁算长寿,子孙们引以为荣,请来亲戚朋友庆祝生日。过寿当天,摆上“百寿百福图”屏风和一桌庆寿宴席为老人祝寿。子女们举起酒杯,向寿星行礼,祝福老人万寿无疆。其他寿桌不同,回甲桌上通常把栗子、枣等水果垒得高高的,还用“囍”、“寿”祈福的字来装饰。回甲桌是为在世父母摆的寿席,按男东女西安排座位。回甲桌前设“献酒桌”摆上酒和酒杯,子孙与亲戚按年龄顺序敬酒,磕头祝愿二老健康长寿。
到现在为止,我们从朝鲜时代的科举制度一直看到六十大寿,接下来去看一下朝鲜时代两班士大夫的死亡,以及随后举行的丧礼和祭礼吧。
常設展示室3 韓国人の一生
<出世・風流・還暦・治癒>
前回、朝鮮時代後期の成人式である冠礼から、豊山(プンサン)金氏の虚白堂(ホベクタン)家の物語までをご紹介しました。ここからは、朝鮮時代の科挙受験から還暦までの人生の道のりを見てみましょう。
朝鮮時代は厳しい身分社会でしたが、科挙試験を通して身分の上昇が部分的に可能でした。学問を崇める儒教社会では、武官より文官を優遇しました。文科に合格して文官になることは、個人の社会的成功であり一家の名誉でもありました。科挙の文科試験の中の大科に合格した人は、名前と成績が書かれた最終合格文書である「紅牌(ホンぺ)」を授けられました。さらに、お酒・料理と御賜花(オサファ)も賜りました。御賜花は、王が授ける紙製の花で、幞頭(冠帽の一種)の後ろに挿して被り、三日間、恩師・先輩や親戚などを訪ねてお礼を伝える「三日遊街」を行いました。
登竜門
登竜門は、中国の竜門という急流の川を遡ることのできる鯉は竜になるという故事に由来し、立身出世の関門を象徴するものです。朝鮮時代の人々にとって、科挙は即ち出世の関門だったため、鯉を刻んだ硯や鯉を描いた「躍鯉図」「蓮鯉図」などを部屋に飾って科挙合格を祈りました。
藍輿
朝鮮時代には、身分によって服装や乗り物に制限がありました。こちらの輿は「藍輿(ナミョ)」といい、朝鮮時代の高級官僚が乗るものでした。当時、輿に乗ったまま宮門を通過できる者は、三政丞(領議政・左議政・右議政:正一品の最高官僚)くらいでした。この藍輿は、承旨や参議など三品以上の階級の官吏の乗り物でした。藍輿は「竹輿」「竹轎」とも呼ばれ、乗る台は椅子のような形で、二本の轅が付いており、屋根やカバーがありません。二人か四人で担いだり持ち上げたりして運び、主に山道のような狭い道を通る時に用いられました。
武官
武官は、兵書の知識や弓術などの武術を試す武科試験出身の官吏です。武官は、正三品の階級(折衝将軍)にまでしか上ることができず、武官の上官は全て文官が兼職しました。文官に比べ武官は差別を受けることもありましたが、壬辰倭乱(1592‐1598、文禄・慶長の役)以降、武科試験が毎年行われ、受験資格も緩和されるようになり、武科試験は下層民にとって出世のチャンスにもなりました。
こちらの肖像画の主人公は、1800年に慶尚右道の兵馬節度使(各道の軍事指揮官)に任命されたことのある閔光升(ミン・クァンスン、生没年不詳)です。当時は、官吏の執務服である官服の胸と背中に付ける「胸背(ヒュンベ)」の紋章に差をつけて階級を表したのですが、武官の場合、正三品上階以上に当たる堂上官は二頭の虎が刺繍された双虎胸背、正三品下階以下に当たる堂下官は一頭の虎が刺繍された単虎胸背を付けました。文官・武官の胸背制度は、1505年に一品から九品まで胸背の使用が可能になってから、その後、様々な変化はあったものの、1910年まで施行されました。
文官
文官は、儒教経典に関する知識と論述力を試す文科試験出身の官吏です。朝鮮時代には学問と儒学を尊び、武官より文官が優遇されました。文官の最高位は正一品の領議政で、朝廷の人事権のみならず、軍事指揮権までも掌握しました。そのため、文科試験に合格して文官職に就くことが最高の出世であり名誉とされました。
文官の官服の胸背には、正三品上階以上の堂上官は二頭の鶴、正三品下階以下の堂下官は一頭の鶴が刺繍されました。こちらの服は、文官が執務する時に着る常服である「団領(タンリョン)」というものです。襟ぐりが丸いのが特徴で、普段、下の方に見える官服箱に入れて保管しました。
佩玉(ペオク)と後綬(フス)
佩玉(ペオク)と後綬(フス)は、王・王妃の法服(礼服)や官吏の朝服・祭服の脇と腰に付けた装身具です。腰の両側に垂らした佩玉は、珩・琚・瑀・璜・衝牙(冲牙)と呼ばれる様々な形の玉で構成され、青い絹の袋に入れて付けることもありました。官吏用の後綬は、官職の等級により、刺繍の紋様と環(輪)が異なりました。一・二品は雲鶴紋と金環、三品は盤鶴紋と銀環、四品は練鵲紋と銀環、五・六品は練鵲紋と銅環、その以下の品階は鸂鶒紋と銅環を付けました。後綬は、白い絹の大帯に付けて腰回りに掛けました。
万人傘(マニンサン)
万人傘(マニンサン)は、地域住民が地方官の功績を称え感謝の印として贈った日傘です。全住民の名前が記されたことから、「千人傘(チョニンサン)」または「万人傘」といい、絹に名前が刺繍されたことから「繍傘(スサン)」とも呼ばれます。日傘は、元々守令(地方官の総称)が地方へ赴任する際に用いられた、日差しを遮るための儀仗の一つでしたが、朝鮮後期には、頌徳碑と共に守令の功績を称える記念品になりました。こちらの万人傘は、1887年、平安北道(ピョンアンプクド)熙川郡(ヒチョングン)の住民たちが、熙川郡守の金永喆(キム・ヨンチョル)の功績を称えて贈ったものです。
風流
朝鮮時代の両班(ヤンバン)は、日常から離れ、自然の中で寛ぎながら風流を楽しみました。奥深い山の草堂で独りコムンゴ(玄琴)を演奏しながら詩を吟じたり、景色の良い場所で親戚や友人たちと歌や踊りを楽しみながら親睦を深めました。パンソリ(歌と語りが合わさった韓国の伝統芸能)や楽器演奏を聴きながらお酒を飲んだり、詩を交わし絵を鑑賞して、士大夫としての素養を高めました。また、囲碁・将棋・投壺などの遊びを楽しんだり、山野で弓矢を使って心身を鍛えました。
風流:遊び
こちらに朝鮮時代の両班(ヤンバン)が楽しんだ遊び道具があります。「双六(サンリュク)」は、二人または二組が交代でサイコロを投げて出る目に応じて駒を移動させ、先に敵地へ入った側が勝つ遊びです。サイコロを投げて出た目が6・6であれば勝てる確率が上がるので双六といいます。1から6まで記されているサイコロ2個を投げて、出る目の数だけ駒を移動させます。この遊びは西域から流入し、主に宮中や両班家で行われましたが、特に朝鮮時代に広く普及し、正月や名節(伝統的祝日)の遊びとされました。将棋やユンノリ(双六に似た伝統遊び)が庶民たちも楽しむ大衆的な遊びだったのに対し、囲碁・双六・投壺・陞卿図(スンギョンド)は上流層を中心に楽しまれた遊びでした。
風流:弓術
弓術は、一定の距離を置いて的を立て、矢を射って当てる韓民族の伝統武芸です。昔から「射芸」とも呼ばれ、士大夫が必ず身に付けるべき武芸の一つとされ、心身の鍛錬のみならず、徳行を身につけるためのものと考えられました。日常から離れ、弓矢で狩りを楽しみ、村々では「郷射礼」という弓術の儀式を通して士大夫間の親睦を図りました。
風流:書画
朝鮮時代の士大夫は、学問を究めて官職に就くことを出世と考えただけでなく、詩・書・画の全てに優れることを最高の教養だと考えました。詩や文章を作る能力は官職生活に必要な基礎知識でしたが、自分の感情を文章や絵画で表現することも、士大夫に求められた教養でした。そのため彼らは、度々日常生活を離れて景色の良い所に行き、散文や詩を交わしたり、絵を描いてその腕前を競い合いましたが、このような集いを記念する画文集として「契会図」を残すこともありました。
風流:楽器
風流の展示コーナーの中央に様々な楽器が展示されています。楽器の前に設置されているスピーカーを通して楽器の奏でる音を聴くことができます。コムンゴ(玄琴)は、弦が6本の伝統弦楽器で、音色が深く荘重なため、昔から「百楽之丈(全ての楽器の中の最高峰)」と称され、学問や徳を積む士大夫の間で広く愛されました。カヤグム(伽耶琴)は、弦が12本の弦楽器で、優雅で澄んだ音色を奏でて雅楽(宮中音楽)と民俗楽(民間の音楽)に広く用いられました。テグム(大笒)は横笛で、葦の薄い内皮を張った音孔(清孔)により、清らかで独特な音色を奏でるため、独奏楽器としても多く用いられました。チャング(杖鼓)は、長い胴体の両側に革を張り、チェ(桴)と手で叩いて演奏する打楽器です。ヒャンピリは縦笛の一つで、音が強くて大きいため、主にテプンリュ(竹風流:管楽器を中心に演奏される音楽)に用いられます。タンソ(短簫)は、細くて短い縦笛の一つであり、弦が7本の擦弦楽器であるアジェン(牙筝)は、長くて低い音を出すのが特徴で、合奏に用いられました。ヘグム(奚琴)は、2本の弦を弓で擦って音を出す擦弦楽器で、鼻声のような独特な音色から「カンカンイ」とも呼ばれます。
治療
朝鮮時代には、病気に罹ったり身体の具合が悪くなったら、韓薬房で治療を受けました。韓薬房では、中国の医学書を参考にして治療を施しましたが、許浚(ホ・ジュン)の『東医宝鑑』が普及してからは、疾病の症状により鍼灸治療を行ったり、薬を調剤したりして治療しました。韓方でも治らない場合は、クッ(巫儀)や護符(お守り)のような呪術などの超自然的な力に頼って疾病を予防し治療しようとしました。
鍼灸
韓方では、人体に五臓六腑(はらわた)があり、それぞれの機能が調和すれば健康であるが、調和が乱れれば病気の症状が現れると考えました。詰まった経絡の経穴(ツボ)を見つけて、気と血がうまく巡るように刺激を与えれば臓腑の機能も調和するとされ、ツボに鍼灸治療を施しました。韓方を勉強する人は、主要な365か所の経穴及びそのツボを繋げた14経絡を示した人体図(経絡図・経穴図)と人体に見立てた銅人を使って鍼灸術を覚えました。
こちらに、韓薬房で使った薬材と道具が見えます。調剤に必要な薬材名と分量が書かれた薬方文や、薬材の重さを量る秤、薬材を砕いたり擦ったりする時に使う薬碾、薬材を切る押切り器、薬材を煎じるのに用いられる薬湯器(薬缶)、ヤクトゥル(煎じた薬を絞る木枠)、薬を入れる器などがあります。こちらの展示コーナーでは、薬材が入っている引き出しを開けて、実際の薬材を見ながら香りを嗅いでみることもできます。
韓薬房
韓薬房は、医員が薬物と鍼灸術で患者を治療する医院兼薬局です。朝鮮時代には、『郷薬集成方』『東医宝鑑』の編纂と普及や鍼灸術の発展と共に、人の体質を四つに分類した「四象体質医学」という新しい医学が生み出され、韓国独自の医術を施す韓薬房もありました。こちらには、韓薬房で医員が患者の肌に触れて診脈したり、押切り器で薬材を切っている人の姿が再現されています。病気になったり身体の具合が悪くなると、このように韓薬房では診脈を通して薬を処方したり鍼灸治療を行って病を治しました。現在、『東医宝鑑』はユネスコ「世界の記憶」に登録されています。
クッチョン(巫儀を行う場所)
特別な治療法が開発されていなかった朝鮮時代には、天然痘や麻疹(はしか)が最も恐ろしい疾病でした。これらを予防したり治すために、ムダン(巫堂:祈祷師)に頼んで、ピョルサングッ(治病の巫儀)やホグ(戸口)グッ・ママベソン(媽媽拝送)グッなどを行いました。こちらのクッチョンには、ホググッの様子が再現されています。このような巫俗信仰は、個人・家庭・村の困難を解消する役割を担い、時には人生の難しい問題や疾病を解決することもありました。クッは、ムダンが神に祭物を供え、歌と踊りを通して、様々な問題の解決を祈る祭儀です。
ここには、ムダンがクッや占いを行うときに使う巫具があります。霊魂を呼ぶ時やムダンが踊る時、神霊が降りてきた時に使われる扇子と鈴や、東西南北中央の方位を守る神を象徴する五方神将旗があります。五方神将旗の五色は、それぞれ、憂患・福・財運・死・祖先を象徴します。
呪術と占い
韓方でも病気が治らない時は、クッや護符のような呪術で病を予防・治療することもありました。人が超自然的力を借りて、ある目的を達成しようとする時に行う原始的な方法が呪術です。呪術は年中行事にも見られますが、主に病の予防や治療のために、ムダン(巫堂:祈祷師)の能力に頼る場合が多く見られました。また、厄除けや招福のために護符を使うこともありました。他に、未来のことが知りたいときには、占筒から出てくる算木で占う作卦占や、人相・手相を見て人生を占う観相占などに頼ることもありました。
左側にある鷹の護符において、鷹は天と地の世界を行き来する霊鳥とされ、病や厄を持って行ってほしいという意味が込められています。下の方にある『唐四柱』は、人の生年月日と出生時間を示す四柱を基に、一生の運勢を周易に従い解説したものです。チェウンは藁人形で、芻霊または処容(チョヨン)とも呼ばれます。年ごとの運を司る九つの直星の中で、「羅喉直星」もしくは「チェウン直星」が九年に一度ずつ回ってきます。チェウン直星の年に該当する人は、旧暦の1月14日にチェウンを作って服を着せ、チェウンの中に名前・生年の干支を書いた紙と硬貨を入れて、道端に捨てます。そうすることで、厄払いができると考えられました。
還暦
今は還暦を祝う宴を開くことが少なくなりましたが、少なくとも1980年代までは、「回甲(フェガプ)」「還甲(ファンガプ)」と呼ばれる還暦を迎えると、祝いの宴を開きました。昔は60歳以上を長寿と考えたので、還暦はめでたいこととされ、子孫たちは親戚や友人を招いて親の還暦を祝いました。祝宴の会場には「百寿百福図」の屏風を飾りました。「百寿百福図」は、たくさんの「寿」・「福」の字を様々な書体で表現した屏風で、親の長寿と多幸を祈る意味があります。また、回甲床(フェガップサン:還暦の祝い膳)を用意して親の長寿を祝い、お酒を注いだ杯を献上し、チョル(お辞儀)をして、親の万寿無彊を祈願しました。回甲床は他の宴のお膳と違って、孝心を表すために栗・棗などの果物を高く積み上げ、「囍(双喜)」・「寿」の字を飾りました。回甲宴は、生きている人のための祝宴で、男性(父親)は東側に、女性(母親)は西側に座りました。回甲床の前には、お酒と杯を載せた献酒床(お膳)を置き、子どもと親戚らが年齢順に杯を献上してチョルをすることで健康と長寿を祈りました。
ここまで、朝鮮時代における科挙から還暦までの様子をご覧いただきました。次は、両班士大夫の死とその後、即ち、喪礼と祭礼について紹介します。
日本語翻訳 河閔恵(ハ・ミンヘ)
翻訳監修 中村克哉(なかむら かつや)